[이종근의 좌충우돌]김진표에 실망한 3가지 이유

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당적 초월해야할 의장이 야당 원대에 일러 바치고 대통령의 임기가 3년 남았는데 갈등을 부추기다니

2024-07-01     매일산업뉴스
윤석열

국회의장을 지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국립묘지에 묻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국립묘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숨져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그에 버금가게 국가에 공헌한 사람이 묻히는 곳이다. 국회의장은 대통령,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과 함께 순국선열 애국지사 급 대우를 받는 자리다.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국회의 대표이자 입법부의 수장으로, 정치인으로서 가장 최고의 지위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장은 국가 의전 서열 2위로 대접받으며, 국회라는 헌법기관의 대표에 걸맞는 위상을 갖고 있다.

서열 2위 의장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서열 5위 국무총리로 자리를 옮겨 비판을 자초한 정세균 전 의장을 제외하고 국회의장을 지냈던 사람은 대부분 정계 은퇴를 하거나 적어도 차기 총선에 불출마한다. 의석수를 가장 많이 확보한 당의 5선 이상급 다선 의원 중 계파색이 옅고, 온건파로 분류되는 의원이 맡으며, 의장 임기가 끝나면 정계 은퇴를 하기 때문에 출신당의 당론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기 용이하고 원내 정당들의 교섭을 맡기 적합해진다. 그래서 정계 은퇴에 큰 부담이 없는 65세 이상 고령의 국회의원이 맡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장은 중립성의 이유로 당적 보유 및 상임위 활동이 법으로 금지된다. 국회의장 당적 보유 금지는 1960년 5대 국회 시절 처음 도입됐으나 6대 국회에서부터 다시 당적 보유가 허용되었고, 이후 2002년 3월 이만섭 전 의장의 주도로 국회법이 개정되며 다시 금지되었다. 하지만 의장 선출과 동시에 자동으로 당적이 상실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탈당계를 내야 하는 시스템이다. 2002년의 이만섭 전 의장은 법 개정과 동시에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고 그 이후의 국회의장들은 모두 당선되자마자 탈당계를 제출해 오고 있다.

이종근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정치에는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어른’은 전직 국회의장의 몫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스스로 품격을 지키려 노력하면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고, 여러 정파 간의 이견과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중재자로서 존경 받고, 현직에서 물러나면 현실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있기에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게서 자유롭기에 정국이 꼬일 때마다 매듭을 푸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후배 정치인들이나 정치부 기자들이 한마디를 들으러 찾아가는 대상이 된다. 오래 전의 국회에서는 초선들이 ‘닮고 싶은 사람’으로서 본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는 의장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독대를 한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회고록에 수록해 파문이 일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6월 28일 ‘김진표 “윤,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 말해…깜짝 놀랐다”‘ 제하의 기사에서 회고록을 인용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10·29 이태원 참사를 두고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음모론’에 기댄 발언을 했다고 비난했다. 한겨레는 김 전 의장이 윤 대통령의 당시 발언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극우 유튜버의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 음모론적인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는 것이 믿기가 힘들었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3가지 점에서 ‘어른’임을 포기했다. 첫째, 국가 의전 서열 1위인 대통령과 2위인 국회의장이 그것도 의장 본인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독대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해당 대통령이 아직 임기 중인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공개한 점이다. 회고록이란 당사자들이 모두 현직에서 물러나서 논란의 여지가 없어질 때 당시의 일을 돌아보며 후대에 교훈이나 귀감이 되게 하기 위해 기록하는 글이어야 한다. 국회의장 직에서 물러난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불과 1년 7개월 전의 일을 자신만의 기억대로 밝히는 것은 ‘회고’가 아니라 ‘현장 중계’다.

둘째, 박홍근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나온 말들을 즉시 전했다는 점이다. 국회의장은 앞서 기술했듯 당파를 초월해서 여야를 중재하고 협상을 하게 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자리다. 자신이 속해있던 야당 원내대표에게 대통령의 워딩을 옮겼다는 것은 정권 비판의 소재로 활용하라는 의도로 읽힐 수 밖에 없다. 국립묘지에 묻힐 서열순위 2위의 국회 수장이 할 행동이 아니다.

셋째, 이태원 참사는 불과 1개월전 자신이 주재한 국회 본회의에서 특별법을 통과시킴으로써 큰 고비 하나를 넘긴 사안이다. 유가족들도 “유가족의 바람대로 여야가 특별법 통과에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며 “만시지탄이나 159명의 희생자를 낳은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에 첫걸음을 뗄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유가족 표현대로 진실규명을 위해 한걸음 내디딘 사안을 그것도 자신이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려 관련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상처를 치유해가는 사안을 들쑤셔서 다시 갈등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다.

김진표 전 의장이 “중립은 없다”는 더불어민주당 내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들에게 일침을 가했을 때 국민들은 오랜만에 국회에서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작고한 강봉균 전 민주당 의원과 더불어 민주당 출신으로는 드물게 시장경제를 신봉한 합리적 의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었다. 파장이 커지자 뒤늦게 “윤 대통령의 소신을 높이 평가한다”는 등 수습하려 애를 쓰고 있지만 그에 대한 실망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