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경의 시콜세상]기득권 된 예타분석, 제대로 하거나 폐지하거나

글ㆍ이의경 대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공인회계사 필수조건은 제대로 된 경제성 평가 충분조건은 세금 낭비 막고 있어야

2024-09-10     매일산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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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정부는 연구개발(R&D)의 예타분석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예타분석이란 ‘예비타당성 분석’의 줄임말로 대규모 사업은 그 경제성을 분석해서 수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무분별한 공공사업의 추진으로 인한 세금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로 1999년에 국가재정법에 도입됐다. 이후 R&D 사업도 2008년부터 예타분석 대상에 포함됐다. 그런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분야의 예타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폐지배경이 된 뉴스도 보도됐다. 세계적으로 양자 기술의 상용화가 본격화되고 인공지능(AI)과의 결합으로 폭발적 시너지가 예측되면서 중국은 양자 기술에 2025년까지 미국의 4배에 달하는 153억달러(약 21조원)을 쏟아붓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1조원대 양자기술사업이 시작은 커녕 2022년 이후 아직까지도 예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신속성이 국가적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R&D 사업이 예타분석에 2년 동안 발이 묶여 있으니 R&D 분야의 예타분석을 아예 폐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공사업의 예타분석은 존치된다.

이의경

그런데 그동안 예타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는 있었을까. 예타분석의 핵심은 경제성 분석이다. 경제성 분석은 사업 수행으로 얻게 될 미래수익을 현재 시점에서 평가한 가치(사업가치)가 투입비용보다 크면 편익·비용 비율(B/C ratio)이 1보다 커서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투입비용은 쉽게 파악되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은 사업가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타분석지침을 보면 미래수익을 현재가치로 계산하여 사업가치를 구할 때 사회적할인율(SDR, Social Discount Rate)이라고 해서 일률적인 값을 적용하고 있다. 2007년부터 5.5%를 적용하다가 2017년에 4.5%로 낮추어 지금까지 이 값을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가치평가 연구자들이 볼 때는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왜냐하면 사업마다 위험이 다른데 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할인율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월말에 받을 월급 100만원과 월말에 당첨될지도 모를 복권의 기대값 100만원을 똑같은 가치로 보는 것이다.

포트폴리오이론을 도입한 마코위츠,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M)을 제시한 샤프, 린트너, 모씬 등의 학자들이 위험과 할인율의 관계를 연구해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 내용은 위험이 다르면 할인율을 그에 맞게 산출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이제 주식, 기업, 기술, 사업의 가치평가에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위험자산(risky asset)으로서 미래수익이 불확실하다는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정학자들이 만든 KDI 지침으로 산출된 사업가치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평가한 값과 다를 수밖에 없다. 거칠게 말하면 그들만의 숫자인 것이다. 그들만의 숫자로 공공사업의 예타분석이라는 영역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현실에 등 돌리고 있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해 보인다. 자신들이 가치평가이론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제학 교과과정에도 가치평가이론이 도입되고 있지만 현재 재정학자들은 이를 공부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예타분석업무를 선점하고 이 기득권을 지키느라고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모형까지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예타분석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제대로 된 경제성 평가이다. 또 예타분석이 존속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도입 취지대로 유효하게 세금 낭비를 막고 있어야 한다. 취지와 달리 실제 효과도 불분명하면서 사업의 통과의례만 되고 있다면 R&D 분야처럼 공공사업에서도 폐지가 바람직하다. 정치권도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업은 예타면제사업으로 지정해서 추진하는 것이 일상이 된 현재 상황에서 예타분석의 필요성을 돌아봐야 한다. 예타분석도 적잖은 세금이 투입되는 것이니만큼 예타분석 자체에 대한 경제성 분석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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