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좌충우돌]문재인과 이재명 사이가 ‘겉촉속바’인 이유

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재명의 대선 패배, 문재인의 대선 개입이 결정타 경기도 방문 김동연 회동으로 ‘포스트 이재명’ 시동

2024-10-07     매일산업뉴스
문재인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패배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었다. 투표일을 한달 앞둔 2022년 2월초, 지지율이 정체돼 있던 이재명은 문재인 청와대에 대선 승리를 위해 본격적으로 문 정부와 차별화를 하겠다고 알리고 부동산 정책 실패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려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문재인 대통령이 제1 야당 대선 후보인 윤석열을 직접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상황을 한겨레신문 2022년 2월 10일자 ‘“식물 대통령으로 죽은 듯 있나”…문 대통령, 윤석열에 강경’ 제하의 기사를 통해 재구성해보자. 기사에 따르면 문재인은 윤석열이 2월 9일 인터뷰에서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격노한 나머지 다음날 오전 열린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직접 적어 온 메모를 꺼내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해당 기사는 그 배경에 대해 “문 대통령이 그동안 ‘검찰을 이용하지도, 검찰에 관여하지도 않았다’는 자부심을 윤 후보가 부정하면서 문 대통령이 ‘모욕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야당 대선 후보가 현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윤석열 측이 문재인을 비판한 것은 그 때뿐만이 아니었는데 왜 하필 선거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예민한 시기에 특별히 ‘모욕감’을 느꼈을까.

이종근

선거가 막바지에 치닫고 있는데 대통령이 야당 대선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하면 야당 대선 후보는 옳다구나 하고 맞대응을 하게 되고 이후 대통령과 야당 후보 간 계속되는 공방으로 여당 대선 후보에게 집중돼야할 시선이 분산될 수 밖에 없었다. 문재인이 윤석열을 직접 비판하며 대선 정국 한복판에 뛰어들자 이재명은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제대로 시도하지도 못하고 접어야했다. 한 친명 인사는 당시의 문재인 행보에 대해 “의도적으로 개입한 것”이라며 “권력 계승을 하지 못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에 대한 비판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재인의 성격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이재명 입장에서는 김혜경 법카 폭로와 더불어 문재인의 개입이 대선 패배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볼 때 0.73%p라는 초박빙 승부에서 김대중 대통령처럼 “나를 밟고 가라”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대선 정국에 대통령이 끼어들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라고 목소리를 높이니 여당 대선 후보에겐 악재 중의 악재가 됐고 악재는 악연으로 이어져 대선이 끝난 이후 이 둘의 관계는 ‘겉촉속바’로 굳어진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양산을 찾은 이재명과 그 손을 맞잡은 문재인은 ‘문명연대’를 표방하며 물리적 화합을 이룰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는 공천 과정에서의 비명학살로 이어졌다. 그리고 7개월만인 9월 8일 또 다시 당대표가 돼 평산을 찾은 이재명이 당내에 전정권정치탄압대책위를 발족, 검찰의 문재인 일가 수사에 당이 맞서주는 모양새를 만들어줌으로써 ‘문명연대’가 부활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겉은 촉촉해 보여도 속은 바싹 말라붙은 이 둘의 ‘좋아 보이는 척 하는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지난 4일 문재인이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경기도청을 공식 방문했다. ‘10·4 남북정상선언 1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 수원을 찾은 문재인은 행사 참석 전 경기도를 깜짝 방문해 김동연 경기도지사를 만났고 예정된 20분을 훌쩍 넘겨 40분간 환담한 후 수원컨벤션센터 옆 광교호수공원을 1시간이나 함께 산책하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이 행보는 두 가지 점에서 이재명을 자극할 수 밖에 없다. 첫 번째는 2018년 문재인 평양방문 공식수행원단에서의 누락이다. 당시 북한과의 접경지도 아닌 서울시의 박원순 시장은 포함시킨 반면 접경지인 경기도 지사를 방북 명단에서 제외시켰으면서 현재의 지사인 김동연을 찾아 남북정상선언을 찬미했다는 것은 “너는 내게 (두 번째로) 모욕감을 줬어”라고 분노하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두 번째는 김동연이 친문들의 은신처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주며 세를 규합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의 전격 방문으로 경기도가 ‘양산박’에서 ‘안시성’으로 격상됐다는 점이다. 실제 친문 핵심인 전해철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경기도 정책 자문기구인 도정자문위원장에 위촉돼 위촉장을 받으며 "김 지사가 제안한 도정자문위원장직을 수락하고 함께 일하게 된 정치적 의미에 대해 전혀 부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자신을 자른 이재명에 대해 칼을 갈기 위해 경기도에 왔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중앙 정치의 민감한 이슈에 대해 말을 아끼던 김동연이 이재명의 대표 브랜드인 25만원 지원을 두고 "(필요한 재원) 13조원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라고 정면으로 반박한 것도 믿는 구석이 생겼다는 의미다. 당연히 문재인의 경기도청 방문은 이재명의 사법리스크에 대응하는 친문들의 구심점 찾기 일환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강을 건너다 풍우를 만나면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도 서로 돕는데 문명이든 명문이든 진심으로 손잡을 수 없는 두 사람 간 은원의 고리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서로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이재명은 공통점이 많아서 더 앙숙이 됐을지도 모른다. 도박꾼 아들과 음주운전 딸 등 자식농사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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