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현의 종횡무진]우격다짐으로 달걀값 잡겠다는 트럼프

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관세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것도 시장 원리에 어긋나 얼마나 세계 시장에 큰 피해를 입혀야 시장 원리로 돌아올까

2025-03-20     매일산업뉴스
관세인상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3월 15일(현지 시각) “미국인들은 달걀뿐 아니라 소고기 부족에도 직면해 있다. 소고기 가격이 수년간 꾸준히 상승해 온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농축산물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에서 다진 소고기 가격은 1파운드당 평균 5.6달러로 2020년 1월 3.9달러 대비 45% 상승했다. 이는 일반적인 물가상승률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보도에 따르면 소고기 가격이 상승한 것은 사료비 등 비용 증가, 가뭄, 인력 부족 등으로 미국 내 소 사육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미국에서 사육되는 소는 약 8670만 마리로 1년 전 약 8720만 마리에서 50만 마리가량 줄었다. 1951년 이후 74년 만에 최저 규모라 한다.

이러한 보도를 접하며 시장의 원리를 다시 한번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의 원리는 자연의 법칙과 같다. 이를테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다가 수평 상태에 이르면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품과 서비스는 더 높은 가격을 얻을 수 있는 쪽으로 이동한다. 이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수요는 낮은 가격으로 쏠린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양쪽의 가격이 비슷해지면 이동은 멈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물의 수평 상태는 시장에서 균형 상태라 할 수 있다.

조남현

이 단순한 법칙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사람들은 다 이 원리에 따라 행동한다. 법칙이라서 따르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위정자들이 곧잘 이 법칙을 망각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시장에 맞서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누구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 단기간에는 이기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 시장의 원리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시장은 시장의 원리를 거스르면 반드시 응징한다. 이른바 ‘시장의 복수’다. 그리하여 잘못을 바로잡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탄생과 종말이다. 인간의 계획으로 시장의 원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고 그걸 실행에 옮긴 게 바로 사회주의 계획경제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철저히 무너졌다.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미리 간파했던 대표적인 경제학자이자 사상가가 하이에크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를 인간의 치명적 자만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복잡다단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간은 정확히 알 수 없고, 그뿐 아니라 지식의 문제(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보를 가질 수 없다는)로 인하여 인간의 계획으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이상향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망상가들이 무모하게 시도했고,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망했다. 시장의 복수가 그것이다. 망하도록 응징함으로써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자만이 빚어낸 실패작이었다는 점이 밝혀진 지 오래지만 자만이라는 인간의 고약한 질환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시장경제 사회에서도 그 원리에 부합하려 하지 않고 그에 반하는 정책을 고집하는 정치세력이 득세하는 건 인간의 자만이거나 무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원리란 개별 현상에 따라 달리 발현되는 게 아니다. 그러면 원리고 할 수 없다. 원리라고 하는 건 보편성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의 원리에 어긋나면 반드시 응징을 당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를 만병통치약쯤으로 여기는 것도 시장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하며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교환, 곧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고율의 관세는 국가 간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을 위축시킨다. 그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 그뿐 아니라 미국 소비자들에게 비싼 가격을 강요한다. 그래서 소비가 위축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6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와 시장 변동성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의 주요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위험을 초래하면서 소비 심리가 하락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만 봐도 그걸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언론들도 미국에서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실제로도 소비 지출이 줄어든다는 소식을 잇따라 보도하고 있는데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교역 상대국들이 비관세 장벽으로 미국산 상품이나 서비스를 막는다고 주장하는 게 맞다면 그 역시 교환을 위축시키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트럼프 행정부식의 방식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그건 마치 자해 협박으로 문제를 풀려는 것과 다름없다.

미국에서 최근 몇 달 새 달걀 가격이 치솟자, 남부 접경지에서 검역을 거치지 않은 달걀 밀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텍사스주 엘패소 검문소에서 한 픽업트럭 운전자가 좌석과 예비 타이어에 필로폰을 몰래 숨겨 반입하려다 적발됐는데, 정작 국경 요원들을 더 놀라게 했던 것은 해당 트럭에 있던 달걀들이었다고 한다. 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미국의 달걀 가격이 멕시코에 비해 서너 배나 높은 데서 비롯된 일이다. 물의 흐름을 막아 놓으니 정상적인 수로가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물이 새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당장은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미국과 세계에 얼마나 큰 피해를 안기고 나서야 순리에서 벗어난 우격다짐이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지 걱정이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지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