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화의 소통화통] 41년만의 반쪽자리 사과 ... '찐’ 사과의 5가지 법칙
글ㆍ김연화 컨피던트스피치 원장 상대의 상처 인식하고 정당화는 금물 주어는 '나'로 하고 제때 구체적으로
지난 11월 23일, 대한민국 11대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가 향년 9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전두환씨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도 없지만 특히나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5.18 민주화 운동으로 가족을 잃은 수많은 피해자들이다. 전두환씨는 광주학살의 책임자로서 단 한 번도 유족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죽는 순간까지 41년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전씨의 장례식에서 그의 아내 이순자씨가 추도사 도중 피해자들에게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짤막한 사과를 한 것이다. 사과를 해야 하는 당사자가 아닌 대리자의 반쪽자리 사과였다. 피해자 가족들은 전씨와 전씨 가족들을 용서했을까?
과거 필자는 한 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오랜 기간 사과의 말 한마디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이 일을 알게 된 지인의 상사로부터 죄송하다는 사과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어느 날 뜻밖에도 그 지인으로부터 수개월만에 사과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자신의 언행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상사의 얘기를 들은 후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었고 미안하다’고 씌어 있었다. 오랜 세월도 흘렀고, 여러 번 읽어보았지만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언급조차 없었다.
사과를 하는 목적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 상대방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찐’사과는 서로 맞고 틀리고가 아닌 상처입은 상대의 감정에 대해 인식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는데, 이것을 뒤늦게 알게 된 아내가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남편 입장에서는 ‘남도 아닌 우리 부모님께 용돈 드린 건데 그게 화가 날 일인가?’ 아내가 상처 입었다는 말에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어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관계회복은 커녕 스스로 고생을 자초하는 격이 된다. 정말 사과를 하고 싶다면, 아내가 상처받은 마음만 인식하면 되는 것이다.
두번째, 사과를 할 때 자신을 정당화하면 사과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다면서 자칫 그 언행에 정당함을 내세우기 쉽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에게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여 지기가 어렵게 된다. ‘’당신이 상처받았다니 정말 미안한데, 우리 부모님께 용돈 드린 거 나중에 다 말 하려고 했었어.” 이런 정당화는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네가 오해한 거야’라는 속 뜻이 내포되어 있기에 진정한 사과라고 할 수 없다. 주로 정치인들이 이런 정당화한 사과를 많이 한다. “저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상처를 입으셨다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송함 보다는 상대방의 착각이고 오해라는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세번째, ‘찐’사과는 ‘나 화법(I Message)’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사과를 할 때 내가 아닌 너로 사과의 말을 시작할 때가 많다. ”너가 화가 났다니 미안해” 진정한 사과를 할 때는 너가 아닌 나로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당신한테 말하지 않고 부모님께 용돈 드린 거 미안해, 당신 입장을 생각해보니 당황스러웠을 거라 생각해.” 사과는 자신에게서 비롯된 상처의 원인을 인식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표현이다. 손뼉도 쳐야 소리가 난다는 핑계로 ‘잘못은 나만 있는 게 아니라 당신한테도 있어’가 아니다.
네번째, 타이밍이다. 사과가 너무 늦어서도 너무 빨라서도 진정성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감정이 정리되지도 않은 상대방에게 바로 사과를 한다고 관계가 금방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사과도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물론 비즈니스관계에서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빠른 사과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마음이 가라앉은 다음에 깊이있는 사과를 하는 것이 더 관계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 또, 너무 늦은 사과는 ‘이제 와서 자기 편하자고 사과를 하나?’ 되려 반감을 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과는 구체적일수록 좋다.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상대방의 마음도 더 빨리 열릴 수 있게 된다. “내가 미안해” 아무리 여러 번 얘기해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상대방에게 상처 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언급함으로써 이 사람이 나를 존중하고 있구나’라는 진정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사과를 할 때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과를 한다는 것은 나만 잘못되었고 너만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사과할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있는 것도 아니다. 의외로 자신의 잘못을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찐’ 사과는 분명 우리의 가치를 높여주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