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학년 대학생이 배우는 내용을 수능에 내서 학원재벌 만드나
왜 상위권 학생의 실수까지 전 국민의 부담으로 걱정해주어야 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시험문제를 출제할 때 교과과정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을 배제하라고 한 지시를 두고 찬반논쟁으로 사회 전체가 시끄럽다. 우리나라에서 대입시험은 평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일이다보니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국민 모두가 교육전문가 수준이고 각자의 분석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어서 의견이 일치되기도 쉽지 않다. 물수능(쉬운 수능)으로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을 것이고 그래서 애들만 불쌍하다는 등 부정적 주장부터 왜 하필 이 시점이냐는 시점 논쟁까지 다양하다. 여러 목소리가 혼재되면서 처지가 다른 수험생과 학부모의 감정이 추가되고 심지어는 이 와중에 정치적 계산까지 더해지니 정작 핵심적 내용이 뒤로 밀리는 것 같다. 그래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세 가지 점을 정리해보자.
첫째, 소위 킬러형 문제의 실상을 보자. 킬러형 문제로 최근 뉴스에 보도된 BIS 자기자본비율을 산출하는 문제는 경영학의 각론 중에서도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는 재무관리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금융기관경영론’이라는 과목에서 다룬다. 이 과목은 필자가 맡고 있는 과목이기도 한데 3학년 2학기에서 이 내용을 다룬다. 그러고 보니 수년 전에도 ‘국제재무관리’라는 과목에서 다루는 환율결정모형이 시험문제로 출제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당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이 문제를 풀었다가 틀리는 바람에 체면을 구긴 적이 있었다. 항상 강의하는 과목이어서 자신있게 풀었는데 이상했다. 이 과목은 4학년 과목이다. 대학 고학년 학생들이 공부하는 내용이 이렇게 고3 수험생에게 출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경영학의 고학년 과목의 내용이 고등학교 국어과목의 문제로 둔갑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영학 분야의 문제들이 출제되는 수준을 참고해 볼 때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심지어 이공계열의 학문 분야에서 출제되는 문제도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유추된다.
둘째, 킬러형 문제가 초래할 수 있는 폐단을 보자. 정규 교과과정에 있지 않은 문제들이 출제되면 수험생이나 학부모는 당연히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원들의 공포마케팅이 힘을 발휘하여 부유층 사람들은 돈을 싸들고 사교육을 찾게 된다. 그래서 수백억 원 연봉의 일타강사와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학원재벌이 등장한 것이다. 서울대 입학사정관이 서울 대치동 유명강사로 변신해서 떼돈을 번다는 소식도 오래 전부터 들려왔다.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져 최근 수년간 20조원 안팎이다가 지난해에는 이를 훌쩍 넘는 26조원으로 최고점을 기록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공부하는 지방거주 학생이 아무리 성실하게 공부해도 어떻게 대학 고학년의 전공과목을 찾아서 공부할 수 있겠는가. 킬러형 문제가 교육기회의 공평성을 해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비 부담은 젊은 세대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인구감소로 소멸될 수 있는 국가로 지목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킬러형 문제의 나비효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혁신이 필요한 이유이고 교육혁신은 킬러형 문제의 배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셋째, 일각에서는 교과내용만으로 출제하면 변별력이 없어져서 혼란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변별력은 꼭 대학의 고학년 내용을 출제해야만 확보할 수 있는 것일까. 고등학교 교과 내용들을 서로 결합시켜서 출제해도 변별력을 갖출 수 있다. 또 변별력이 떨어지면 상위권 학생들이 한 문제만 실수해도 피해를 볼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상위권의 학생이 1문제를 실수로 틀려서 서울대 의대 갈 것을 연세대 의대에 가게 되는 것이 그렇게 큰 피해인가. 그리고 실수에 대한 대가를 본인이 치루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왜 상위권 학생의 실수까지 전 국민의 부담으로 걱정해주어야 하는가. 과도하게 변별력의 중요성을 부풀리는 것도 누군가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한 명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