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한민국 인물 비판을 색깔론으로 몰아붙이는게 난센스
친일 친미에 대해서는 저주하면서 친북 친중에는 관대하기
광주광역시가 조성 중인 정율성 기념공원 관련 논란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지금은 탈이념 시대인가?’라는 질문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에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강기정 광주시장이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적과 나’를 구분하는 적대의 정치를 그만하라”고 반박하고 나선 상황이라는 점에서다. 또 그간 ‘이제 이념의 시대는 갔다’며 이념적 입장에서의 문제제기를 낡은 사고로 비판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힘을 얻은 듯 보이기도 했다. 이른바 새로운 정치를 추구한다는 사람들은 곧잘 그런 식의 의견을 개진하곤 했으니 이념을 따지는 건 ‘꼴통 보수’임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일제 식민지 시절 항일운동을 했던 공산주의자들을 떠받들었던 것도 ‘탈이념’이 명분이었을 것이다. 좌파였든 우파였든 항일운동을 했으면 그만이지 굳이 이념적 성향을 따질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논리다.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면 이념을 떠나 독립운동을 인정하는 게 옳다.
하지만 설사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속을 위협했다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다. 김일성의 앞잡이로서 남침을 주도하고 앞장섰다면 과거 항일운동을 했더라도 그런 인물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건 곤란하다. 개인적으로야 독립운동가로 보든 말든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으로 인정한다면 최소한 반(反)대한민국 이력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자해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정율성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탈이념 시대 여부를 떠나 그렇다.
그런데 정율성 논란을 계기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사회가 이념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과연 이념을 초극할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 이래 철학자들이 추구한 것이 이념이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데카르트의 합리론, 존 로크의 경험론, 칸트의 순수이성, 헤겔의 절대정신 등이 다 이념을 추구한 결과다. 심지어 기존의 철학을 뒤집어버린 니체마저 자신의 이념에 머물러 있었다. 공산주의를 꿈꾼 마르크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를 비판한 칼 포퍼, 새롭게 자유의 가치를 찾아낸 하이에크, 현대 해체주의 철학자들까지 누구 할 것 없이 이념을 추구했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는 바는 인간이 이념을 넘어선 초월자일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념이라는 게,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또는 가치체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기정 시장이 말한 이념은 전후 맥락으로 볼 때 반공 이념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른바 ‘색깔론’이다. 그런데 색깔론 또한 가치의 추구라는 점에서 이념이다. 그간 좌파 진영이 ‘색깔론’이니 ‘색안경’이니 할 때 그 의미는 ‘시대착오적이고 비합리적인 반공주의’를 비난(비판이 아니다)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반공주의는 철 지난 유행가가 아니다. 특히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세습 공산정권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그것도 그 상대방인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며 끊임없이 도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대한민국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비판을 색깔론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난센스다. 공산주의에 대한 역사의 심판이 끝난 상황이지만 마르크스 역사발전론의 한 단계에 있는 사회주의를 내면화한 세력이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규모 이상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넌센스이긴 마찬가지다.
지금 대한민국의 이념적 현실은 온통 혼돈의 상태다. 카오스의 세계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언론의 보도 태도나 국민의 반응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정율성 기념공원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한국 사회는 두 쪽으로 쪼개져 있다. 정율성 기념공원 논란에 이어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에서 이른바 ‘독립군‧광복군 5 영웅’ 흉상 이전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 벌어진 논란 또한 이념적 혼란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방부는 “국난 극복의 전체 역사에서 특정 시기에 국한된 독립군‧광복군 흉상들만이 사관생도들이 매일 학습하는 건물의 중앙현관 앞에 설치돼 있어 위치의 적절성, 역사교육의 균형성 측면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장교 육성이라는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여러 논란이 있는 분을 육사에서, 특히 생도교육의 상징적인 건물의 중앙현관에서 기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사실 국방부 설명이 아니더라도 애당초 문재인 정부 당시 5인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 것부터 문제가 있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를 상징하는 인물들과는 동떨어진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 정부가 이들 흉상을 설치한 것은 문 정부의 역사관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문 전 대통령은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어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원봉은 김구‧김규식의 남북회담 당시 평양으로 가 그대로 눌러앉은 뒤 6‧25남침의 주역이 된 인물로서 어떤 이유로도 국군의 뿌리라고 할 수 없는 인물.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한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인식이다.
문 전 대통령은 홍범도에 대해서도 똑같은 인식을 보여주었다. 일반 국민에게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 및 청산리 전투의 영웅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 무장 독립군이 궤멸당한 자유시 참변에 관여한 인물로 레닌에게 자유시 사태를 보고하러 모스크바로 가서 레닌의 서명이 새겨진 권총과 금화 100루블을 받은 인물이다. 문 전 대통령은 옛 소련 영토인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의 유해를 봉환해와 건국훈장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수여하며 극진하게 받들어 모셨다. 문재인 정부나 더불어민주당은 왜 그렇게 김원봉이나 홍범도, 그리고 정율성과 같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들만 골라서 기리려 하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국방부가 5인 흉상 이전을 추진하는 것도 아마 홍범도 흉상 때문일 것이다.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으로 생각한다면 5인 중 광복군 대장 지청천 장군의 흉상이라면 육사 본관 앞에 위치해 있어도 문제 되지 않을 것이지만 홍범도는 물론 나머지 독립운동가들은 육사와 관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굳이 대한민국 국군과의 관련성과 상관없이 흉상을 모신다면 첫손에 꼽힐 영웅은 당연히 안중근 의사다. 하지만 주적인 북한의 침략이라는 만일의 사태를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육군 장교를 배출하는 육사에 모실 흉상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주역들이 맨 처음 고려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정율성 기념공원 논란이든 육사 본관 앞 흉상 이전 논란이든 이념을 떠나 생각할 수는 없다. 이념의 색안경이라는 잣대는 온당치 않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이념을 초월할 수 없다. 민족주의도 하나의 이념이며, 반일주의나 반미주의도 마찬가지다. 친일이나 친미에 대해서는 그토록 저주하면서 친공산주의나 친북‧친중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짝이 없는 좌파의 태도는 그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극우와 쌍둥이다. 극단적이라는 말이다. 이번 논란이 새로운 통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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