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을 죽인자들이 이 나라의 유공자라고?" 절규 안할까
유죄판결 받은 사람들 돕고 싶다면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하라
필자는 2010년 4월 19일부터 2년 임기의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 위원을 2번에 걸쳐 역임한 바 있다. 4년의 임기 중 겪은 일 가운데 유독 한 장의 사진처럼 또렷하게 기억 속에 저장된 장면이 있다. 당시 매주 월요일이면 오전 9시부터 심의위원회 회의가 열렸는데, 하루는 심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에 입장하는데 지긋한 나이의 한 여인이 9명의 위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건 일종의 침묵시위였고, 그 주인공은 사북사태 당시의 피해자였다.
사북사태란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는 국내 최대 민영탄광인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탄광노동자들이 임금 소폭 인상과 어용노조에 반발하며 벌어진 소요 사태를 말한다. 조선일보 1980년 4월 24일자 1면은 “광부 3천500명 유혈 난동, 사북읍 점거 4일째”라는 굵은 제목의 기사와 함께 노조 지부장 부인 김 모 씨가 손목이 묶인 채 쇠기둥에 결박당한 모습의 큼지막한 사진을 게재했다. 침묵시위의 주인공은 바로 그 노조 지부장 부인 김 씨였다.
당시 보도를 통해 사태를 접한 국민 대부분은 김 씨가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요 신문들이 있는 그대로의 진상을 전하지 않았으며, 사진 또한 진실을 가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 위원들은 심의 며칠 전 심사자료를 미리 받아 검토하는데 필자는 그때에야 비로소 사태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김 모 씨는 과격한 일부 노동자들에 의해 집에서 광장으로 끌려와 단 위 쇠기둥에 묶였는데, 보도된 사진과는 달리 온몸을 발가벗긴 채였다. 그런데 사진기자들이 그 상태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옷 좀 입히라고 요구하여 김 씨는 겨우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옷이 다시 입혀지기 전 과격 노동자들은 김 씨에게 여자로서는, 아니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치욕을 느끼게 하는 린치를 가했다. 린치의 내용은 차마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의 행위는 인격 살해였다.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한 사실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 전문위원들의 조사 과정에서 김 씨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모양이고, 심의 날짜를 확인하여 당일 침묵시위를 벌인 것이다.
가해자들은 사건 당시 그들의 범죄 행위로 처벌받았다. 사북사태를 전체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한다 해도 김 씨에 린치를 가한 사람들은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었고, 대다수 동료 위원들이 이에 공감했다. 당연히 가해자들은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 만일 그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 곧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받았다면 피해자 김 씨는 두 번 죽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심사자료 검토 당시는 물론 지금도 김 씨보다 필자가 더 몸서리쳐진다.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안)을 놓고 여야는 물론 민주당과 정부도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부산 동의대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까지 민주화 유공자가 될 수 있다거나 명확한 심사기준이 없다는 등을 문제 삼는다. 필자는 여기에 십분 공감한다. 나아가 사북사태 당시 인격 살해를 당한 김 모 씨의 경우처럼 의도와는 달리 피해자 본인이나 가족에게 2차 가해를 입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동의대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범죄를 벗고 ‘민주화 유공자’가 된다면 당시 생죽음을 맞았던 경찰 유족은 분을 삭이기 어려울지 모른다. ‘내 아들을 죽인 저자들이 민주화 유공자라고?’라는 생각이 왜 안 들겠는가.
필자는 제주 4‧3 사건 당시 인명살상을 주도한 자들까지 ‘제주 4‧3 특별법’에 의해 희생자로 인정되자 폭도들에게 부모를 잃은 사람들이 ‘내 아버지를 죽인 저자가 희생자라고?’ 하며 분노하는 여러 사례를 보았다. 동의대 사건 피해자 유족 또한 그러하지 않겠는가. 왜 피해자나 유족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민주유공자법안에 대한 또 다른 우려도 있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에서 똑같은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각기 다른 사람이 누구는 ‘인정’, 누구는 ‘불인정’ 판정을 받은 사례가 제법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정부 당시 위원회는 ‘사노맹(남한사회주의연맹)’ 사건 핵심 인물 두 사람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데 반해 이명박정부 당시 위원회는 하위 그룹에 속한 연루자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똑같은 사노맹 연루자들임에도 위원회 구성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민주화 유공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질 것이다.
어떤 행위가 민주화 운동이냐 아니냐의 판단은 판단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판단은 역사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위원회를 만들어 판단하는 무리수를 범해 왔다. 그 바람에 법원의 확정판결이 법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힘에 의해 뒤집히는 ‘참사’가 빚어져 온 것이다. 이런 일은 법치주의를 중대하게 훼손한다. 민주당이나 그 지지자들은 민주화운동이 법원 판결을 뒤집는 게 아닌 별개의 일이라고 하지만 법을 어기고도 후에 오히려 보상받는 일이 거듭되면 결국 법을 무시하는 풍조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정의를 내세워 사형(私刑)을 범하는 일이 용인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법치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민주유공자법안은 불필요한 논란만 낳고 사회갈등만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굳이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뜻을 모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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