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식 홍준표 이철규는 자신들의 선수만큼 어른답나
2040세대의 싸가지 없음 탓하기 전에 거울부터 봐야
하이브를 지휘하는 방시혁 의장과 산하 레이블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경영권 다툼이 빚은 ‘민희진 신드롬’이 세상을 강타했다. “뒤에서 비겁하게 XX하지 말고 맞다이로 들어와.” 최근 기자회견에서 민희진은 이 한마디로 자신에게 불리했던 여론을 완벽하게 뒤집었다. 기자회견 후 세상의 반응은 가히 신드롬을 넘어 종교적 숭배로 번지고 있다. 처음에는 연예 매체가 나서서 민희진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여론이 형성됐다가 기자회견이 끝나자 ‘민희진 밈’이 쓰나미처럼 커뮤니티와 SNS를 뒤덮더니 급기야 중앙언론들이 ‘을(乙)의 반란’으로 제목을 달면서 대세는 역전됐다.
하이브의 방시혁은 AhnLab 이사회 의장 시절의 안철수 못지않게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워너비’, 자식들을 그렇게 키우고 싶은 상징이었다. 방탄소년단을 월드 클래스 대스타로 성공시킨 방시혁은 K-팝을 개척하고 안착시킨 선구자다. 하이브에서 독립하려는 민희진처럼 방시혁도 JYP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다 독립했다. 방시혁과 민희진의 충돌과는 달리 박진영 JYP 대표와 방시혁은 아름다운 이별을 택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처럼 박진영을 뛰어넘은 방시혁은 2023년 1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박진영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나의 선생님이자 형제이자 절친’이라고 썼다. 왜 박진영과 방시혁의 관계처럼 방시혁은 민희진에게 선생이나 절친이 되지 못했을까.
방시혁과 민희진의 사이에는 수조원의 이익이 걸린 경영권이 걸려 있다. 수천억 자산가 민희진에 열광하는 2040세대에게 “정신 차려! 이건 못 가진 자와 가진 자의 계급적 갈등이 아니라 가진 자와 더 가진 자의 이권 다툼이야!”라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민희진이 하이브와 맺은 계약이 진짜 ‘노예 계약’인지, 그가 요구하는 ‘30배 풋옵션’ 조건이 정당한 것인지 정확히 따져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민희진을 찬양하는 숭배자들은 그런 ‘지적질’ 역시 하이브의 거대 권력이 작용한 ‘민희진 죽이기’의 일환이라고 일축한다. 민희진 신드롬은 뼈와 살을 갈아 아무리 독창적이고 전도유망한 비즈니스 아이템을 만들어 놓아도 플랫폼 대기업들의 횡포에 밀려 적정한 보상도 없이 빼앗기고 마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에 대한 울분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2040세대에게 ‘어른’은 없다. 생물학적 나이의 윗세대는 있어도 무능함을 감추면서 자리보전만 하는 ‘상사’나 호시탐탐 아이디어와 아이템을 빼앗아 가려는 ‘갑’들만 있을 뿐이다. 현실 세계에서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과장은 없다(물론 만년과장 오상식도 워너비 선배는 아니지만). ‘어른’은 ‘어른다움’을 보일 때만이 ‘어른’으로 인정받는다. 미국 진출 성공을 위해 미국에 사는 지인의 신혼살림 집 방 한 칸에서 둘이 숙식을 함께하며 고생할 때 매일 같이 양말을 뒤집은 채로 벗어 그냥 빨래통에 던지는 박진영을 견딜 수 없어 그 길로 귀국해 JYP에서 독립했다는 방시혁에게 웃으며 그때는 미안했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박진영은 ‘어른스러웠다’. 그들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해 피아노를 함께 치며 서로를 성원하는 노래를 불렀다.
정치에서의 ‘어른 실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국회를 상징하는 좌장 곧 ‘어른’의 자리는 국회의장이다. 국회의장의 권위는 어떤 정당이나 정파를 넘어 존중받아야 하며 그러기에 국회의장은 정파나 정당을 초월해 중립적 태도를 견지해야 하고 그래야 사무처 입법처 직원들 역시 의장의 명을 따르게 된다.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민주당 소속 후보들이 명심(明心)에 대놓고 구애하는 행태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다. 당내 이재명 강성지지 모임인 더민주혁신회의 소속 당선인 축하 모임에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당선인 4명이 쪼르르 달려가 충성 경쟁을 보인 것도 어른답지 못하다. 급기야 조정식 후보는 불출마를 선언하기 직전 2009년 7월 22일 여야의 난투극 속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이윤성 국회 부의장이 김형오 국회의장 대신 미디어법을 통과시키자 셔츠 차림으로 의장석으로 올라가 항의한 일화를 소개하며 “내 내면에는 불 같은 성격이 있다”고 호소했다. 물리적 충돌 없이 원만하게 협상할 수 있도록 국회를 이끌어야 할 국회의장 후보로서 부끄러운 지난날의 과오를 훈장처럼 자랑하는 사람을 ‘어른’으로 대접할 수 있을까.
20여년의 나이 차로 정치인으로서나 검사로서나 자신의 후배인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두고 조롱과 폭언과 독설을 쏟아붓는 홍준표 대구 시장의 어른답지 못한 행태도 점입가경이다. 4.10 총선을 앞두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갑자기 등판해야 했던 당시부터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고 물러나 있는 현재까지 홍준표는 한동훈을 향해 ‘정치 아이돌 → 문재인 사냥개 → 철부지 정치 초년생 → 윤석열 정권 폐세자 → 용서 못할 갑툭튀’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풍부한 어휘력으로 욕 세례를 하고 있다. 비판과 비난이 다르듯 지적과 쌍욕은 구별된다. 자신의 대권 욕심에서 비롯된 홍준표의 한동훈 죽이기는 아래 세대인 잠재 경쟁자의 싹을 짓밟겠다는 ‘꼰대’의 노욕일 뿐이다.
원내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의 ‘후배 정치인 이중성 행태 폭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신이 결정해서 선택한 길이라면 중간에 누가 출마를 권유했든 출마를 비판했든 스스로의 결정에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다운 행보다. 원내대표 출마를 둘러싸고 그가 쏟아낸 말들은 출마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 건지 전혀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중얼거림 수준이었다. 주장이나 의견이나 비전을 공유해야 할 정치인이 그것도 3선의 중진이 ‘들고 남’이 뚜렷한, 선이 굵은 행보를 보이지 못한 것도 부끄러운 일일 텐데 불출마 선언 직후 언론에 나가 당내 인사 일부가 개인적으로는 원내대표 출마를 요청해 놓고 공개적으로는 불출마를 공개 촉구했다고 폭로해서 딱하게도 까마득한 후배 정치인들에게 ‘다구리’를 당하고 있다.
2040세대의 ‘싸가지 없음’을 탓하기 전에 자신들의 어른답지 못함을 성찰해야 한다. 지금은 ‘맞다이’로 들어가기 전에 거울부터 봐야 하는 세상이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