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등 기업 경영권 노리는 주주 이익을 보호하라고?
소수 주민이 제맘대로 의원을 충실의무 위반으로 고소한다면?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주요 골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재 회사로만 규정하고 있는 것을 주주에게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럼 회사의 경영진인 이사가 주주들의 이익도 고려할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투명성이 제고되고 기업가치가 올라간다는 논지다.
얼핏보면 맞는 말 같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는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실제론 대단히 모순적이다. 현실적으로 주주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너무도 다양하다. 주주에는 지배주주, 단기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 기계적으로 투자하는 연기금, 외국인 투자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주주, 장기 일반 투자자, 매일매일 시세차익을 노리는 초단기 투자자 등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이사보고 총주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법적용상 많은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해가 안 된다면 충실의무 확대를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적용해 보면 된다. 우리 헌법에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국민 하나하나의 이익을 다 고려할 수 없으니, 국가이익을 통해 전체 국민, 나아가 미래세대의 이익까지 제고하려는 취지다. 나아가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말고 소신껏 일하라는 취지에서 오직 양심에 따라 일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만일 법을 개정해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 전체의 이익 고려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지역주민 70%가 찬성하지만 30%가 반대하면 충실 의무 위반인가? 지역 주민 모두가 찬성한다고 국가재정 고려없이 막 퍼주면 충실의무를 다한 것인가? 소수 주민이 자신의 마음에 안 든다고 국회의원을 충실의무 위반으로 고소하면 법원은 받아줘야 하나? 그럼 국회의원은 계속되는 소송남발에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야당이 주장하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말이 안 된다. 이는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선출하려는 이사의 수만큼, 특정 후보에게 몰아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5명의 이사를 선출할 때 각각 1표씩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5표를 몰아서 한 명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취지는 힘이 약한 소수주주들 보호다. 그런데 이건 얼핏 들어봐도 참으로 괴이한 제도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국회에 적용해보자. 국회 본회의에 처리해야 할 법안이 10개 올라오면 소수당 의원이 꼭 처리하고 싶은 법안에 10표씩 몰빵 투표하면 된다. 만일 100건이 올라온다면 국회의원 1명이 특정 법안에 100표를 행사할 수 있다. 10명도 안되는 소수당 의원들이 힘을 합치면 법안 한 두개쯤 너끈히 통과시킬 수 있다. 이게 과연 상식적인가?
이 외에도 우리나라 상법은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의결권을 3%이상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주주의 영향력이 너무 크니 이를 제한하자는 취지다. 국회에 적용한다면 다수당은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을 선출할 때 의결권을 3% 이상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이 외에도 여러 제도가 있으나 사례는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겠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의 상법 논란이 부담스러웠던지 정책토론을 제안했다. 찬반 양측의 의견을 교차 검증을 해보자는 취지니 토론 자체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토론보다 더 확실한 검증 수단이 있지 않은가. 바로 국회를 시험대(Test bed)로 삼아보는 것이다.
명분은 충분하다. 상법 개정의 명분을 그대로 갖고 오면 된다. 예를 들어 첫째 주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게 된다면 국회의원의 직무수행이 투명해지고 그럼 국가의 가치도 올라갈 것이고, 둘째 소수의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셋째 다수당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의결권을 제한하면 된다. 실제 운영해보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상법에도 확대 적용하면 된다. 그러나 만일 단지 300명 뿐인 국회에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같은 주장은 하지 않길 바란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검증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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