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수명은 늘지만 기업의 수명은 자꾸 줄어들어
기업은 창출한 부가가치를 이해관계자들에 보내는 ‘도관'
기업은 법으로 인격(人格)이 부여된 생물이다. 사람처럼 태어나서 성장하고 성숙기를 지나 쇠락하면 생을 마감한다. 법인(法人)과 자연인(自然人)은 누가 더 오래 살까? 인간은 100세 시대를 말하지만, 법인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다. 컨설팅그룹 맥킨지에 따르면, 기업의 수명은 1975년에 30년이던 게 2000년대 들어 15년 이하로 줄었다. 2027년쯤엔 12년 정도로 예측한다. 미국 S&P 500대 기업의 상장 기간도 1970년 평균 30년 정도이던 게 지금은 20년에도 못 미친다. 2000년 상장되어 있던 '포춘 500대 기업' 중 지금은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사람의 수명은 늘지만, 기업의 수명은 자꾸 줄어드는 것이다. 환경의 불확실성이 늘면서 그만큼 사업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사업을 책임지는 사람이 경영자다. 똑같은 자원을 갖고도 CEO의 역량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리는 게 경영의 세계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전자는 흥하는 기업이고 후자는 망하는 기업이다. 두 회사 모두 보잉과 에어버스가 만든 항공기를 갖고 같은 시장에서 운송업을 했지만, 회사의 운명이 갈린 건 ‘경영’ 때문이었다. 티웨이항공과 이스타항공도 마찬가지 경우. 비슷한 시기에 창업해 똑같은 항공운송업으로 성장했던 저비용항공사(LCC)지만, 전자는 흥하고 후자는 파산했다. 회생 중인 이스타항공엔 주인이 바뀌었고 많은 임직원이 직장을 잃었다. 중요한 대목마다 발휘되는 경영자의 역량은 이렇게 중요하다. 험한 바다일수록 선장이 중요하듯 기업은 CEO를 잘 만나야 한다. 지금까지 잘 나가는 삼성전자의 미래는 어떨까. 1969년 창업한 이 기업이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건 이제 20년 남짓이다. 최고의 기업이라도 사실 나이는 많지 않다. 같은 해 창업해 동년배인 대한항공, 동원그룹도 55세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백 살 넘는 장수기업이라면 1896년 ‘박승직상점’으로 창업해 지금 128살이 된 두산그룹 정도다. 산업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특히 장수기업이 많지 않다.
그러면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사업주는 당장 영리가 목적이지만, 국가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는 시장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노동, 기술, 지식과 정보 등의 자원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이해관계자와 나누는 역할을 한다. 경영에선 ‘1+1=2’가 답이 아니다. 투입물 1과 1이 더해져 5쯤 산출되는 게 좋다. 창출된 가치 3이 바로 부가가치(value added)다. 인건비, 조세 공과금, 금융비용, 감가상각비, 임차료, 그리고 경상이익의 합계다. 다시 말해 종업원에게 주는 임금, 정부에 내는 세금, 은행 등에 내는 금융비용, 자산에 대한 임차료, 재투자를 위한 적립금, 그리고 주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을 모두 합한 게 바로 부가가치다. 모든 사업장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생존하고 성장한다.
커피전문점에서도 원두커피와 종이컵, 생수와 시럽으로 만들어진 3000원짜리 커피 한잔이 팔리는 순간 투입 원가 1000원을 뺀 2000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이는 모두 이해관계자들에게 돌려진다. 기업은 그래서 창출한 부가가치를 이해관계자들에게 흘려보내는 ‘도관(conduit)’에 비유된다. 자본가와 노동자를 구분하고 기업이 번 돈을 주주나 사업주가 챙긴다는 건 어설픈 자본주의 비판이다. 반도체와 바이오, 신에너지와 항공우주 분야에 국가가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도 이들 업종의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무슨 의미일까? UN 글로벌 콤팩트는 인권과 노동, 환경, 반부패 등 네 분야에 대한 책임으로 규정한다. 이해관계자의 관점에서 보면, 주주와 직원, 고객, 협력업체, 지역사회와 정부에 대한 책임을 뜻한다. 부가가치를 나눠 갖는 이해관계자그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적 ‘책임’에 대해선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기업은 경제의 주체로서 주주는 물론 소비자와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기업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기업활동으로 훼손된 환경과 자원문제에 대한 해결의 책무가 있다는 사회경제적 관점이 있다. 반면에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을 창출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경제적 이윤을 내는 것’이라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 교수의 주장처럼 기업은 생존만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견해가 있다.
어느 경우이건 CSR은 기업에 대한 사회적 기대다. 소비자들은 기업이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일 때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고 이는 곧 소비로 이어지게 된다. 현대 경영에서 산업계의 화두인 ESG 경영의 한 축도 사회적 책임(S)이다. 더구나 부의 양극화로 기업은 이제 단순히 영리 추구뿐 아니라 이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시대적 요구를 받고 있다. 대기업들이 CSR 전담 부서를 두는 이유다. 그렇다고 CSR을 당연한 걸로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유시장경제의 위협이 된다. 지금 잘 나가는 기업도 앞날을 알 수 없으니, 사업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번 돈으로 세금 내고 일자리를 만들어 직원 월급 주는 게 기업으로선 사회적 책임의 이행이고, 기업인이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다. 점차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절치부심하는 경영자들이 늘어나는 게 안타깝다. 크건 작건 사업가는 돈 잘 버는 게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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