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5대 증권거래소 도입기업 상장 허용
文정부 미상장 벤처만 허용하는 '반쪽 추진'
[매일산업뉴스]정부가 미상장 벤처기업들에게만 적용하는 '반쪽짜리'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서 기업의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안정적 유지하는 등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게 차등의결권 전면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11일 글로벌 증권거래소 및 한국 주식시장의 차등의결권 도입현황을 분석한 결과, 글로벌5대 증권시장은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의 상장을 허용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응하고 자국기업의 해외 상장을 방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경련에 따르면 글로벌 시가총액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이 성장성·수익성·안정성 등 모든 측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글로벌 5대 증권시장은 모두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의 상장을 허용했으며 주된 이유는 적대적 M&A에 대응한 기업 경영권 보호 및 자국기업의 해외 증권시장 상장 방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1898년 처음으로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의 상장을 허용했으나, 많은 기업들이 채택하며 주주에 대한 차별논란이 일자 1940년 차등의결권을 금지했다. 1980년대 적대적 M&A가 성행하고, 혁신기업들이 잇따라 나스닥에 상장하며 1994년부터 다시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의 상장을 허용했다.
나스닥에는 구글, 페이스북 등 혁신기업들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며 상장했고, 도쿄증권거래소에서는 단원주 제도(일정수의 주식을 하나의 단원으로 하여 1단원에 하나의 의결권 부여)를 도입해 차등의결권과 동일한 효과를 얻고 있다.
바이두, 알리바바 등 중국 대표 IT 기업이 잇따라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한 것을 계기로 상해증권거래소에서는 2019년, 홍콩증권거래소에서는 2018년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의 상장을 허용했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들의 총매출은 54.4%, 고용은 32.3% 증가하여, 차등의결권 미도입기업의 총매출 증가율(13.3%)과 고용 증가율(14.9%)을 크게 상회했다.
특히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의 R&D투자는 190.8%, 설비투자는 74.0% 증가한 데 반해, 미도입기업의 R&D투자 증가율은 49.1%에 그쳤으며 설비투자는 0.7% 감소했다.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은 당기순이익(75.9%), 영업이익(65.6%) 모두 미도입기업(당기순이익 21.0%, 영업이익 15.9%)보다 크게 증가하여 수익성 측면에서 뛰어났다.
도입기업들의 자본은 75.6% 증가한 반면 부채비율은 89.0% 감소했고, 같은기간 미도입기업들의 자본은 21.4% 증가에 그치고 부채비율은 6.9% 증가하여 안정성 또한 미도입기업보다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차등의결권 도입기업들은 배당금 규모, 희석주당이익도 큰 폭으로 늘어 주주이익을 실현에도 더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당성향 또한 도입기업이 14.9% 증가한 반면, 미도입기업은 6.3% 감소했다. 희석주당이익은 주당이익에서 잠재적 보통주(전환사채 등)를 추가적으로 고려, 주당이익이 최대한 감소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는 보수적인 주당이익 측정법이다.
한국에서는 상법, 한국거래소 상장규정 모두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결정하자 차등의결권 도입논의가 촉발됐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 중인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증권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벤처기업만을 대상으로 하고 상장 후에는 3년 이내에만 차등의결권이 유효하기 때문에 반쪽짜리 제도라는 비판도 있다.
차등의결권은 적대적 M&A 등에 맞서 기업의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 경영성과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차등의결권 제도는 글로벌 5대 증권시장에서 도입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자국기업의 해외 증권시장 상장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자본시장이 완전 개방된 상태에서 자칫하면 국내 유수기업들이 잇따라 해외에 직상장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며 “차등의결권제를 전면 허용하여 개별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본시장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