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업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예타 면제 받고
일상적 사업은 논리성이 결여된 방법으로 경제성 분석
우리나라에서는 대규모 재정사업(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 국가의 재정지원규모가 300억 원 이상)의 경우에는 사업을 실시하기 전에 국가재정법에 따라서 해당사업의 타당성에 대하여 검증 및 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과정을 예비타당성조사(예타)라고 하는데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평가결과를 근거로 투자의 우선순위를 결정하여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는 1999년에 김대중 정부가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생길 수 있는 예산낭비를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제도이다. 그런데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서 예타를 면제할 수 있어서 예타 면제사업에 대한 정치적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22조원의 4대강 사업을 예타 면제하여 비난을 받았는데 당시 비난의 주체였던 현 정부가 2019년에 24조원에 달하는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했다. 총선을 앞둔 시기여서 선심성 정책이라고 야당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2021년 부산 재보선을 앞두고는 김해 신공항을 백지화하고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예타를 면제할 수 있게 했다. 심지어 탈원전과정에서 경제성을 조작해 월성원전을 폐쇄시켰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렇게 정작 중요한 사업들은 예타에서 빠져나가고 이제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사업들만 예타를 받는 것 같아서 예타 제도에 대해 회의가 생긴다.
그런데 예타 제도에 대한 회의는 예타의 분석 논리에서도 보인다. 예비타당성 분석은 기술적 타당성, 정책적 타당성, 경제적 타당성 분석, 세 가지로 구성되지만 이 중 경제적 타당성 분석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경제적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비용편익분석이라는 방법을 적용하는데 여기서 핵심적 내용은 편익과 비용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편익과 비용은 미래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들의 현재가치를 구해서 비교해야 하는데 이때에 현재가치를 구하기 위해 사회적 할인율이라는 것을 이용하게 된다.
문제는 현행 경제성 분석에서 그 할인율을 모든 사업에 똑같은 값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2021년 현재 적용하고 있는 할인율은 4.5%임). 이것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면 모든 사업에서 미래에 들어오는 현금흐름의 위험을 똑같게 본다는 것이다. 이는 위험이 크면 그만큼 할인율이 크고 위험이 작으면 할인율이 작아야 한다는 가치평가의 기본원리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일찍이 마코위츠(Markowitz), 샤프(Sharp), 린트너(Lintner) 등 다수의 학자들이 제시하여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이론과 실무에서 두루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모든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하면서 똑같은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고속도로를 건설해서 받게 될 통행료 수입과 우주개발사업을 해서 앞으로 생길지 모를 우주관광수입을 똑같은 위험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더 쉽게 설명한다면 다음 달에 월급으로 받는 돈과 다음 달에 추첨할 로또에서 생길지 모를 돈을 똑같은 가치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경제성 분석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들어도 수긍하기 어려운 지침이다. 이렇게 비논리적인 지침으로 계산한 경제성 평가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까. 정치적 입김을 탓하기 전에 예타는 경제적 논리성부터 갖추어야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사업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예타 면제를 받아 포퓰리즘은 막지 못하면서 여타의 일상적 사업들은 논리성이 결여된 방법으로 경제성 분석을 하고 있다면 현행의 예타방식은 개선돼야 한다. 예타 면제의 요건을 강화하면서 분석의 논리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성 분석에 불필요한 비용만 지출하면서 예타 자체가 예산을 낭비하고 사업을 지연시키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