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정적 제거 '차르' 푸틴
천안문 광장 마오 사진 되고픈 시진핑
배타적 민족주의 결과물 모두 '타산지석' 삼아야
결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됐다. 지난 21일 ‘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이 진입했다. 러시아 국영 보도기관들은 우크라이나가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지만 조작된 뉴스임은 세계가 다 알고 있다. 러시아는 2008년에도 조지아를 침공한 바 있다. 2014년에는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다.
러시아의 행태를 보면 이 나라가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제정 러시아의 '차르’를 넘어서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뿐 아니라 푸틴이 그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를 탄압하고 나아가 제거하려는 정치적 음모와 공작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것을 보아도 러시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푸틴의 정적인 야권 운동가 나발니는 2020년 8월 비행기에서 갑자기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 뒤 독일로 이송돼 치료를 받다가 작년 1월 귀국과 동시에 러시아 당국에 체포됐다.
그는 뒤이어 열린 재판에서 2014년 사기 혐의로 받은 집행유예가 실형으로 전환되면서 3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상태인데, 여기에 더해 기부금 횡령 혐의로 다시 재판정에 섰다. 그런데 이번 재판은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포크로프 감옥에 마련된 임시 법정에서 비공개로 열렸다고 한다. 누구도 ‘차르’ 푸틴에게 도전할 엄두를 낼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외신들은 나발니가 최고 징역 15년 형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푸틴은 나발니를 영원히 대중들로부터 격리할 심산인 듯하다. 어쩌면 나발니는 감옥에서 살해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발니의 동료들은 그런 우려를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사태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수록 나발니가 더 위험해질 거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자유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 통치체제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은 철의 장막이 사라진 오늘날도 여전히 공산체제 당시의 두려움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이 장기집권하며 ‘차르’로 군림할 수 있는 것도 그 토대 위에서다. 이러한 러시아는 평화로운 국제질서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보다도 더 위험한 나라는 중국이다. 이른바 G2라고 으스대지만 여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인 중국. 중국을 문명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반문명국가, 아니 야만 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세대, 곧 MZ 세대의 중국 혐오는, 그것이 설사 단순한 감정적 차원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MZ세대의 반중감정은 감정적인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의 반중정서는 단순히 지난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드러난 중국인들의 국수주의적 애국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공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간 중국이 보여온 국가 수준의 행태는 물론 중국인들의 반문명적 사고를 우리 젊은이들은 간파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중국인들이 보여준 애국주의는 아직 문명화되지 못한 대중의 우매함 때문이라고 이해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이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반문명국가다. 그 저급하고 무지한 대중이 뒷받침하는 전체주의 사회, 그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인들은 그러한 중국에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시각으로 보면 중국은 한참 멀었다. 중국은 결코 패권국가가 될 수 없다.
패권국가가 되려면 최소한 국제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중국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자국우월주의, 맹목적안 쇼비니즘 따위로는 세계를 인도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전체주의 국가가 패권국가가 되면 그건 세계에 재앙이라는 점에서 중국이 패권국가가 되어도 안되고 될 수도 없다.
왜 중국을 전체주의라 하는가.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지금까지 걸려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수천만 명이 죽어 나갔음에도 어떻게 마오는 지금까지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이 중국을 전체주의라 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만이 아니라 마오쩌둥 또한 전체주의의 지배자로서의 ‘절대악’이었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절대악 마오쩌둥을 숭배하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자유로운 개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사회가 바로 전체주의 사회다. 거기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마오쩌둥과 같은 개인숭배의 대상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야만성과 전체주의는 히틀러의 독일이 그러했듯이 대중의 열렬한 지지 위에서 가능했다. 전체주의 연구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반으로 ‘폭민(暴民)’을 주목했다. 대중은 ‘우중(愚衆)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 우중은 바로 아렌트의 ‘폭민’과 같은 개념이다.
전체주의가 대중을 조직하며 자신의 기반으로 만드는 도구는 무엇인가. 그건 자국 우월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다. 중국인들이 노골적으로, 그리고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그런 집단적 심리상태와 공산당 일당 독재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자. 우리 안에 전체주의의 조짐은 없는가. 배타적이고도 적대적인 민족주의, 개인보다 공동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먹히는 사회, 그런 것들이 다 전체주의 요소들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전체주의 요소는 다분하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우리의 타산지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