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미국도 도입? 그 대상은 원유를 채굴과 생산, 유통하는 대형 석유기업들
[매일산업뉴스]정치권발(發) '횡재세(초과이윤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경제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초과이윤세란 고물가·고유가로 인해 역설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정유업체 등 일부 업종에 대해 초과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주장이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고유가 상황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정유업계는 역대최대실적을 달성했다‘며 ”정유업계에 고통분담을 요구하겠다”고 한데 이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된다“며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소비자들 사이에 치솟는 고유가로 인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기름값 안정을 유도하기 위해 유류세 인하율을 20%에서 30%로 확대한 데 이어 37%까지 내렸지만, 휘발유값은 여전히 1리터당 2000원을 웃돌면서 소비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우리나라도 고유가로 고수익을 얻은 업종에 대해 초과이윤세를 물리게 하자는 말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경제계와 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은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에 반하는 정책”이라며 “리스크에 대한 프리미엄이 초과이윤의 목적인데, 말하자면 대박의 꿈을 꾸지 말고 적정이윤으로 기업하라는 것인데 적정이윤이란 없다”고 말했다.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최준선 명예교수는 “모든 사업은 항상 균등하게 이익이 나는 것이 아니다. 시절에 따라 부침이 있고, 그 기회를 잡아 성공하는 기업과 실패하는 기업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이것이 시장원리인데, 이익이 난다는 이유로 이를 박탈해 다른 업종을 지원한다는 것은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처사이고, 정부의 시장개입을 초래하는 반시장적, 반자본주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정주 기업정책팀장(법학박사)은 “초과이윤세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며 “정책을 하시는 분들은 좌유균형을 봐야 한다. 당장의 문제해결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세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특정 업종이나 기업을 타깃으로 임의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은 징벌적 성격은 갖는 것으로 세금제도의 본질을 훼손한다‘며 ”세금을 높인 만큼 유류관련 제품 생산의 비용이 높아지고 이는 국민에게 가격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외 사례를 들어 국내도 초과이윤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과세대상이 우리나라 정유업체와는 차이가 있다는게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영국과 미국 등 초과이윤세를 구체화한 국가들은 원유를 직접 시추·생산해 판매하는 초대형 유전기업들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원유를 수입해 가공·정제해 되파는 정유사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영국은 지난 5월 26일부터 에너지값 급등에 따른 초과이익분의 25%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에너지수익세’를 시행하고 있다. 기존 수익의 40%(목적법인세 30%%+ 별도 부과금 10%)를 세금으로 부과했는데, 여기에 한시적으로 에너지수익세 25%를 추가해 총 65%의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부과대상은 영국 북해산 원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쉘(Shell) 등이다.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수입원유에 대한 정제활동으로 인한 수익에 대한 관세는 없다. 특히 슈퍼 세액공제(Super-deduction)스타일의 투자세액 공제를 ‘에너지수익세’법에 담았다는 점이다. 투자세액공제율을 현행의 2배인 80%까지 확대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이윤율이 10%를 넘는 정유사에 추가적으로 21%의 연방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기존 법인세가 21%였는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최고 42%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은 원유를 채굴과 생산, 유통하는 대형 석유기업들이다.
특히 초과이윤세를 부과하면 기업의 투자 심리를 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인해 정유사는 생산할수록 이익이 줄어드는 만큼 공급을 줄이거나 설비가동률을 낮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기름 가격이 되레 오르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정유업체의 설비투자 축소로 이어져 향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 영국도 정유업체에 초과이윤세 부과를 결정한 직후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180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엑손모빌, 셀, BP, 셰브론, 필립스66, 마라톤 페트롤리엄, 발레로 에너지 등 7대 정유사에 서한을 보내 즉각적인 석유생산 확대를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준선 명예교수는 “모든 사업체는 조금이라도 수익이 날 때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는 것이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인데,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거나 수익의 일정부분을 박탈하는 것은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정부의 치명적 자만에 불과하다”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특정산업 자체를 파괴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시장을 왜곡시켜 결국은 전체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유업계 역시 “횡재세가 웬말이냐”며 펄쩍 뛰고 있다. 특히 정유업계는 손실날 때 정부가 손실보전을 해 줬느냐며 항변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 석유제품 수요가 급감하면서 정제마진이 배럴당 1달러 대까지 떨어지면서 연간 5조원에 달하는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당시에 정부의 손실보전 등은 없었다는 것이다.
정유업계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대부분 유가급등으로 인한 재고관련 손익이라는 주장이다. 정유업계는 재고관련 이익 7300억원을 제외할 경우, 올해 1분기 영업이익률은 6%인데, 이는 회계상 이익일 뿐 운전자본 증가와 순차입금증가 등으로 현금흐름은 양호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최근 고유가 및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요위축,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유가는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으며, 3분기에는 재고관련 손실이 반영될 것으로 정유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제능력 확충을 통해 전체 정제량 중 50%이상을 수출하며 안정적인 내수공급 구조를 갖춘 국내 정유업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며 “오히려 배터리, 수소, 재활용 플라스틱 등 탈산소·친환경 설비 구축과 고용창출로 유도하는게 시장원리에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