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부터 집행까지 전문 하청업체 동원 편법 난무
소모적 경쟁으로 대학 역량 약화시키는 사업 지양해야
초중고 교사의 주된 업무는 학생 교육이다. 그렇지만 대학 교수의 경우에는 교육과 연구를 병행해야 한다. 주요 대학의 경우에는 교육보다 연구를 더 중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연구 결과물은 교수 개인은 물론이고 대학과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 정부도 연구역량을 강화시켜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자 BK21, NURI사업 등 대규모 재정지출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 경쟁력을 높이려고 수행하는 재정지원 사업이 본래 취지와는 달리 대학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올해에 와서야 일부 대학이 소폭 인상을 했지만 대학 등록금은 무려 15년 동안 동결되어 왔다. 누가 봐도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계속되고 있는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사립대학들은 그 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대학 재정지원 사업은 가뭄의 단비와 같다. 주로 교육부가 주도해서 대학 재정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교육부 말고도 정부의 여러 부처, 지방자체단체까지 나서서 다양한 재정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재정지원 사업이 왜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할까. 사업이 선정되는 과정, 사업이 집행되는 현장, 그리고 사업의 결과까지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첫째, 사업이 선정되는 과정을 보자. 사업공고가 나면 돈에 목마른 많은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신청한다. 그래서 교수들은 발주 기관에게 돋보이는 사업계획서를 만드느라고 올인을 한다. 대학에서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교수들로 팀을 구성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표준비를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인 연구와 강의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경쟁이 더 치열지면서 교수들만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이제는 전문 기획업체에게 돈을 주고 맡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둘째, 사업이 집행되는 과정을 보자. 사업이 선정되었다고 해도 대학이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애초부터 용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업이 선정되면 사업단을 구성하고 사업목적에 맞추어서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 집행내역을 보면 이것이 대학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사업에 필요한 교수, 연구원,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데 사업이 끝나고 나면 이들 인건비는 대학에 지속적인 부담이 된다. 올해 시행되고 있는 ‘디지털새싹 양성사업’을 예로 들면 이는 교수들이 초중고 학생들에게 IT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대학에서 초중고 학생들을 불러 교수들이 강의하거나 심지어 교수들이 초중고를 다니면서 강의를 하고 있다. 교수를 교사로 만드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를 하고 그 결과물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고등교육도 아니고 보따리장수처럼 초중고를 다니면서 강의하는 교수들을 보면 이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짧은 기간 내에 사업비를 다 써야 하니 IT관련 강의업체에게 불법(?)하청까지 주기도 한다.
셋째, 사업을 집행한 결과로 오히려 대학이 난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에 뜨거웠던 프라임사업은 인문사회계열의 입학정원을 융합공학전공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사업을 따기 위해서 듣도 보도 못한 융합공학전공을 만들어 사업을 딴 대학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신설한 융합전공에 신입생이 대거 미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업비는 받았지만 미달사태로 등록금 결손이 크게 생겨 오히려 더 큰 재정난에 처하게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신설된 전공은 향후 상당기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에 고정비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대학 간 소모적인 경쟁으로 대학 본연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사업은 지양해야 한다. 예산을 초중고처럼 경상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방식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특성화를 추구하고 그 결과도 각자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