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를 사회학의 눈으로 읽는 운동권 경제학의 폐해
그 바람에 부동산 정책에서 28전 28패 참담한 성적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했다가 그 어처구니없음을 꼬집은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꼬리를 내린 모양새다. 임 전 실장은 페이스북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그 입에 경제를 올리려면 경제를 망친 윤석열 정권의 실정에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라며 “작년 경제성장률이 1.4%로 주저앉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IMF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가 됐다. 20여 년 만에 소매판매가 줄었다”고 썼다가 윤 전 의원에게 “기본 지식이 없다”는 비판을 받으며 스타일만 구겼다. 윤 전 의원은 작년 경제성장률 관련 통계수치도 아직 나오지 않은 점과 임 전 실장이 환율 문제를 모르고 한 비판이라는 점을 짚은 것이다. 짐작기로 임 전 실장은 한 위원장 ‘때리기’ 대열에 끼어들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다가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윤 전 의원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윤석열 정부가 어려움을 겪는 가장 중요한 배경이 문재인 정부의 구조개혁 외면 때문임은, 경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임 전 실장이 간과한 게 하나 더 있다. 그건 민주당이 사사건건 윤 정부의 개혁에 시비 걸며 갈 길 바쁜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대외 환경이 좋지 않은 가운데 어떻게 하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정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민주당의 심술은 놔둔 채 윤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할 생각을 하는 건 경제에 대한 무지 이전 양심의 문제다.
그런데 임 전 실장이 드러낸 경제에 대한 무지가 그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짐작기로 민주당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면 그가 586 운동권 출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민주당식 경제 철학’에 길들여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민주당식 경제 철학이란 경제를 경제학이 아니라 사회학의 눈으로 읽는 시각을 말한다.
사회학으로 경제를 읽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역사적으로 확인되고, 검증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후예인 종속이론이 낳은 결과가 그것이다. 종속이론은 경제학이기보다는 사회학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넓게 볼 때 마르크스주의까지 포함하는 이론이지만 좁게는 60년대 중남미를 중심으로 전개된 주장을 가리킨다. 그 요지는, 세계는 중심부와 주변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변부는 중심부에 종속된 구조로 인해 중심부에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속이론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과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착취당하니 자급자족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종속이론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흥 독립국들 대부분이 저개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세계로 나가려 노력하기보다는 자립경제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안으로 움츠린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세계를 향해 나아간 나라들은 한결같이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지금은 선진국 반열에 있다. 바로 아시아의 4룡(龍), 곧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그들이다.
한국에서도 60년대는 물론 70년대까지도 자립경제론이 활개쳤다. 이른바 ‘학현파’라 불려진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서울대 변형윤 교수와 박현채 교수 등이 핵심 인물들. 그들의 이론은 도식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아류들이었다. 정치권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른바 ‘대중경제론’을 주장하며 그들과 맥을 같이 했다. 그 와중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수출주도 경제정책을 밀어붙였다. ‘한강의 기적’은 거저 얻은 찬사가 아니다. 남들이 겁내는 길, 그래서 감히 선택하지 못하는 길을 스스로 열어나갔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기적에 대한 헌사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인류가 번영할 수 있었던 건 교환을 했기 때문이다. 교환은 분업을 가능케 했고, 분업은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그 원리는 국가 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립경제는 국제 분업에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경제발전이 저해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자립경제를 주장한 종속이론은 경제의 기본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정치‧사회적으로만 세계를 이해했다.
종속이론이 등장한 배경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 중상주의에 따른 피해의식이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신생 독립국들을 지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피해의식이 경제 원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어지럽혔다는 점이다. 경제를 경제학이 아니라 사회학의 눈으로 본 탓이다.
사실 중상주의 정책을 편 제국주의 국가들도 경제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건설과 중상주의 정책을 편 것은 자국 상품을 내다 팔 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는 수출만이 좋은 일이고 수입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의 산물이다. 다행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튼 우즈 체제 하에서 국제 자유무역이 가능해지면서 자유세계의 나라들은 이전 중상주의 시대를 압도하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제3세계나 신생 독립국들은 그 수혜에서 스스로 이탈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민주당은 더 이상 경제를 경제학이 아닌 사회학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 5년이 그런 시절이었고, 그 바람에 부동산 정책에서 28전 28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받은 것이다. 그런 점을 정확히 깨닫지 못한다면 그건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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