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대, 2020 21대 총선의 추억’ 공천파동 때문에 참패
한동훈 비대위 계파 챙기기 없이 시스템 공천으로 불복 없애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에게는 별명이 많다. 2016년 최순실 청문회에서 국조특위 위원장으로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얻게 된 ‘MC성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자세를 똑바로 하라고 지적하면서 붙여진 ‘버럭성태’, ‘호통성태’, 국조위원들이 사회자에게 계속 발언시간 연장을 요청하자 1분씩 추가시간을 허용하면서 얻게 된 ‘노래방 주인’ 등등 우호적인 별명들도 많지만 탈당 복당을 거듭해 ‘박쥐’ 등 비호감 별명도 따라다닌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들개’가 아닐까 싶다. 풀 네임은 ‘엄동설한에 버려진 들개’. 야당 시절이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때 “야성을 갖추자”고 강조하면서 “들개의 강인함으로 무장해 여권의 공세에 맞서 물러서지 않는 전사로 싸울 것”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노동운동가가 보수정당에 들어가 당 주류의 반대 속에서도 ‘정년 60세 연장법’ 등을 통과시킨 것이나 9일간의 ‘진짜 단식’을 통해 드루킹 특검법을 관철시켜 김경수와 문재인 정권의 여론조작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는 과정에서 보듯 그는 들개처럼 홀로 싸워나갔다.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보수 우파 승리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불출마를 선언했던 그로서는 한동훈 비대위와 공관위의 강서을 공천 배제 결정을 수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다시 삭풍이 살을 에는 겨울 벌판에 버려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핵관 이철규 의원의 공천 농단’이라고 성토하며 반발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일주일 만에 “깊이 고민했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은 지금도 달랠 길이 없다”며 “이제 우리당의 '시스템 공천' 결과를 받아들이려 한다. 당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기여로 답해주신 한동훈 위원장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도 전한다”고 한 비대위원장에게 감사의 뜻도 전했다.
석동현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이번이 두 번째 공천 배제다. 2016년 3월 6일 이한구 공관위가 1차 단수 공천 명단을 발표하면서 민주당을 탈당해 새누리당에 입당한 조경태 의원에게 부산 사하을 지역구를 주자 해당 지역구에서 유권자들을 만나며 터를 닦아오던 석동현은 "공관위의 결정이 그대로 당 최고위 회의에서 통과된다면 상향식 공천에 정치생명을 건다고 그간 수차례 공언한 김무성 대표는 대표직 사퇴를 포함해 상응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석동현 만 반발한 게 아니었다. 그날 발표된 컷오프 대상자나 공천 배제된 예비후보들은 모두 불복했다.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여의도 중앙당사는 서울 종로에서 탈락한 김막걸리 예비후보가 '막걸리'를 들고 당사를 항의 방문하고, 임창빈 예비후보가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과 항의 시위를 하는 등 종일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석동현에게는 ‘친윤’이라는 꼬리표가 새로 붙게 되었고 민주평통 사무처장이라는 직위도 ‘낙하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의 공천 과정을 언론들이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면서 ‘역차별’이라는 억울한 감정이 들만도 했다. 그러나 2016년 배제 때 즉각 불복 성명을 냈던 석동현은 1차 단수 공천 발표에서 박정훈 전 TV조선 시사제작국장에게 송파갑 공천이 주어지자 "당의 결정에 겸허히 승복한다"며 "당의 총선 승리와 윤 정부의 성공을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고 SNS를 통해 밝혔다. 그의 승복으로 '윤과 40년지기 석동현도 공천 승복', '1호 공천에 용산은 없었다'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이어졌다.
2016년 3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상향식 공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앞세운 '찐박' 공천에 저항하기 위해 김무성은 처음에는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 경선제)를 주장했지만 친박계의 파상 견제를 받자 대신 국회의원 후보를 아래에서 위로 공천하는 상향식 공천을 통해 민주적인 공천을 뿌리내려야 한다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양보를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공관위에 나가 당대표임에도 공관위원들에게 고개 수그리며 공천 면접을 받는 수모를 견뎌내기도 했지만 결국 공관위와 충돌하는 파동을 거치면서 21대 총선에서 "보수당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었다.
그랬던 그가 또 다시 상향식 공천을 입에 올리며 부산 영도 출마를 선언하자 정가에서는 '무대답지' 못하다는 말이 쏟아졌다. 그의 별명이 수호지의 만두장사 무대가 아니라 ‘무성대장’의 약자 무대인 이유는 상도동계의 막내로서 평소 선이 굵은 정치행보와 함께 언행이 일치된 일관된 리더십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에서 다선 원로 의원들이 주로 맡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직을 고사했을 때 정계 복귀할거냐는 기자 질문에 “70살 먹고 표 달라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던 김무성이었다. 그래놓고서는 “후배들이 정치를 못해서 다시 나왔다”며 “마땅한 이유 없이 컷오프를 당하게 되면 비민주적”이라고 배수진의 출마선언을 했을 때 "무대도 별 수 없구나" "공천 탈락시 무소속으로라도 나오겠네"라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랬던 그가 출마선언 한 달 만에 “부산 중구·영도구 선거구에 등록한 후보들을 한 달간 지켜보니 모두 훌륭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된다”면서 “이제 내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했다. 당의 승리를 위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라고 말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공관위에서 시스템 공천을 정착시켜 잘 진행이 되고 있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의 공천 과정이 아직 남아있지만 지금까지처럼 순항해서 연착륙하게 된다면 김성태, 석동현, 김무성 세 사람의 승복이 결정적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2016년, 2020년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유례없이 참패를 한 것도 ‘공천번복’ ‘공천불복’ ‘공천참사’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총선 판세를 결정짓는 요소는 흔히 인물 바람 구도라고 하지만 무엇보다 마땅한 인물을 적재 적소에 배치하는 안정적 공천 과정이 첫 번째다. 국민 눈에 공천 혁신으로 비칠지 아니면 사천 파동으로 보일지는 당을 이끄는 리더의 능력과 의지에 달렸다. '들개'도, '지기(知己)'도, '무대'도 한 목소리로 한동훈 비대위를 언급하며 공천 결과에 승복했다. 한동훈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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