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 공장 가동, 3년 이른 SK 용인공장 삽도 못떠
경직적 근무시간제, 환경단체의 무조건 반대 '갈수록 태산'
지난주 토요일 일본 구마모토현에 기쿠요초 반도체 공장이 준공됐다. 대만의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TSMC가 투자한 것이다. 총 8조8000억원 규모의 사업으로 이 중 일본 정부가 4조2000억원을 지원했다. 다소 보수적인 일본 정부의 성향을 감안할 때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파격적인 지원이었다.
지원은 자금에 그치지 않았다. 필요한 행정적, 주변 인프라 지원에 온 힘을 다했다. TSMC가 2021년 10월에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2022년 4월에 착공했는데, 단 22개월 만에 이 대규모 공장을 완공할 수 있었다. 중국도 아니고 일본에서 이처럼 빠르게 일이 진행된 것은 최근에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당초 공장은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었다. 사실 5년도 그렇게 느린 속도는 아니었으나, 이를 두 배 이상 단축시킨 것이니 입이 쫙 벌어질만하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365일 24시간 공사를 진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일본은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한국, 중국에 밀려 세계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이번에 반도체 시장에 일본이 아직 건재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이번 공장 건설 이후 TSMC는 구마모토현에 두번째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활에 날개를 달게 됐다. 두 번째 공장은 2027년 가동이 목표다. 이 역시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사실 속도전의 대명사는 한국이었다. 반도체, 스마트폰의 후발주자였음에도 한국이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근로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근무하고, 정부도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세계적인 속도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본을 넘고, 미국을 넘보면서 우리의 산업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장기인 속도전에서도 밀리는 느낌이다. 과연 한국은 일본처럼 건설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직적인 주52시간 근무시간제, 무사안일로 일관하는 공무원의 문화, 인근 지역의 이기주의, 환경단체의 무조건 반대 등이 맞물려 있다. 자칫 건설 과정에서 안타까운 사망사고라도 발생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어 경영진이 감옥에 가야한다.
그러서일까. 2019년 2월 용인에 투자하기로 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은 아직 제대로 첫 삽도 못 뜨고 있다. 분명 일본 TSMC보다 3년이나 앞서 투자를 발표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시간이 생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또 다른 경쟁자인 미국의 인텔은 꿈의 1.4나노 초미세 공정을 2027년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사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상 우리 산업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제도의 늪에, 지역 이기주의·환경단체 반발과 같은 사회적 덫에 걸려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도체 산업은 지금도 우리의 대표 먹거리 산업이자, 앞으로도 가장 유망한 산업 중에 하나다. 이런 시장에서 우물쭈물 스스로 발목을 잡는 행태를 계속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새로운 장기를 만들진 못할망정 이미 가진 장점마저 잃어버리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