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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경의 시콜세상]2차 대리인을 보면 1차 대리인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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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경의 시콜세상]2차 대리인을 보면 1차 대리인을 알 수 있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3.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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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의경 대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공인회계사

친인척 아닌 전문경영인들로 임원 임명해야 기업 종속
공천 받은 후보자들을 예스맨으로 채워넣는 당의 미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양대정당 공천 부적격 심사기준 관련 실태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양대정당 공천 부적격 심사기준 관련 실태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리이론은 주주와 경영자 사이의 대리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주주는 경영자에게 돈을 맡긴 위임자이고 경영자는 이를 운용하는 대리인이다. 따라서 경영자는 기업가치가 극대화되는 의사결정을 해서 주주의 부를 늘려줘야 한다. 그런데 복잡한 경영 환경 속에서 최고경영자(CEO)가 모든 분야를 커버할 수 없다. 그래서 분야별로 업무를 맡길 임원들이 필요한데 재무분야의 CFO, 영업분야의 CMO, 소통분야의 CCO, 기술분야의 CTO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서 CEO가 각 분야의 임원들을 임명하는 것은, 본인이 위임자가 되고 분야별 임원들은 대리인이 되는 2차 대리관계를 맺는 것이다.

종전에는 1차 대리인인 CEO가 2차 대리인을 모두 친인척으로 채워서 문제가 되곤 했는데 이러한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미국 기업들이 전문성 갖춘 경영자들을 통해서 높은 성과와 주가로 주주들에게 보답하는데 비해서, 한국 기업들은 전문성이 없는 친인척들을 앉혀놓고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손실은 1차 대리인이 발생시키는 대리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기업총수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학계와 정치권은 매운 비판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2차 대리인으로 진정한 전문가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으므로 기업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꽤 해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그런데 정작 이를 앞장서서 비판하던 정치권에는 여전히 이런 모습이 남아 있다. 4월 총선을 앞둔 정당들의 공천 상황에서 더 그렇다. 선거 후보자를 확정하는 공천도 1차 대리인이 2차 대리인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경영자가 주주를 위한다면 2차 대리인을 전문가로 채용해서 기업가치를 높이겠지만 자신의 경영권만 생각한다면 충성스러운 예스맨이나 싸움꾼을 선호한다. 이러한 논리는 정치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한쪽은 친윤초선, 현역불패라고 비판을 받고 다른 한쪽은 비명횡사에 더해 종북세력의 영입까지 지적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때 특정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푸드 칼럼니스트가 경기관광공사로 내정된 적이 있었다. 낙하산 인사,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어 결국 후보직을 사퇴했지만 적지 않은 물의를 빚었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전문성 결여였다. 비슷한 시기에 임명된 제주관광공사 사장의 이력이 비교됐다. 당시 제주관광공사 사장은 광고계 사관학교로 불리는 제일기획에 입사해서 임원까지 지냈고 싱가포르 주재원, 스페인 법인장, 익스피리언스 캠페인 그룹장, 옴니채널비지니스/BE비지니스 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25년간 글로벌 브랜드 전문가의 길을 밟은 인물이었다. 2차 대리인의 대비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간의 눈길을 끄는 파격발탁도 전문성을 갖춘 숨은 인재를 찾아내야 신선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벼락출세에 그칠 뿐이다. 성남FC 버스기사가 공개채용절차도 없이 경기도 공기업의 임원이 된 파격에 의아한 적이 있었다. SNS를 운영하면서 대선 경선 당시 상대방 후보에 대한 비방을 주도했다는 점만 눈에 띌 뿐, 그에게서 임원직에 맞는 전문성은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러한 벼락출세는 충성심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는 1차 대리인 주변에서는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입장을 바꿔 2차 대리인의 입장에서 봐도 전문성은 오랜 공부와 경력으로 만들어지므로 이를 갖추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충성심은 용비어천가를 부르거나 상대방에 대한 과격한 공격으로 쉽게 증명해 보일 수 있다. 가성비가 훨씬 높다. 그래서 정치신인들이 전문성보다는 월광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처럼 튀는 언행으로 파격발탁되는 장면이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전문성이냐 충성심이냐. 기업과 정치, 모든 분야에서 2차 대리인은 1차 대리인의 거울이다. 주인도 주인이 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대리인으로부터 주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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