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선출 방식 바꾼다고 반등할 희망이 보일까
새로운 기치 내건 새 인물이 나서야 없는 길도 보인다
국민의힘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총선 참패로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국민의힘 모습은 황우여 상임고문을 비상대책위원장에 지명한 것만 보아도 역력하다. 현역 다선의원 그 누구도 총대를 메려 하지 않아 하는 수 없어 뒷방으로 물러앉은 사람을 다시 불러냈으니 이 당에 얼마나 사람이 없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세울 때까지 당을 관리하는 과도기 비대위원장을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 하나 없이 오로지 자기 이익에만 눈이 먼 자들만 득시글거린다는 의미다. 이런 집단을 이념을 같이하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 대표 권한대행을 겸임해 온 윤재옥 원내대표는 황 비대위원장에 대해 “공정하게 전당대회를 관리하고, 당과 정치를 잘 알고, 덕망과 신망을 받을 수 있는 분으로 후보를 물색했다”고 그를 지명한 이유를 설명했다. 황 위원장도 한 일간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비대위 성격은 위기 타개보다는 안정적으로 당 지도부가 구성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있다”고 말해 비대위가 관리형일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의문인 것은 전당대회를 공정하게 관리해서 당 대표를 새로 선출하면 그가 무기력에 빠진 당을 추슬러 재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윤 원내대표나 황 위원장의 말은 그렇게 들린다. 비정상적인 비대위 체제가 아니라 전당대회를 통해 정통성 있는 지도부를 꾸리면 마치 국민의힘이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총선 참패로 인한 내상이 이만저만 깊은 게 아닌 데다가 처음부터 워낙 내공이 모자랐던 국민의힘을 누가 되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당 안팎이나 관전하는 평자들 사이에서는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 방식을 개정해야 하느니 마느니 하며 설왕설래 중이다. 2022년 정진석 비대위 시절 당원 70%, 일반여론조사 30%이던 룰을 당원 100%로 변경했었는데 이를 다시 되돌려놓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원 대 일반여론조사 비율을 5대 5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 정당 대표를 뽑는데 일반 국민의 뜻이 많이 반영될수록 좋은 건가. 그렇다면 당원의 존재는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리 상식으로는 정당의 토대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당원이다. 전당대회라는 것도 당원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모여 당의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행사이고, 일반인들은 단지 참관인으로서만 참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원 100%에 의해 당 대표를 선출하는 게 정상 아닌가.
물론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새천년민주당)이 이른바 ‘국민 참여 경선제’를 도입, 노무현 후보를 선출해 대선 승리를 한 적이 있고, 이후 양당이 이를 제도화한 사실에서 보듯 일반 여론조사 결과를 당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방식은 나름대로 역사성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원 의사 100% 반영이 그릇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게 정상이며, 일반 여론조사 산입 방식은 선거공학적 측면을 고려한 것일 뿐 비정상이다. 결국 당원 의사와 일반여론조사 반영 비율 문제는 정당정치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여론조사 비율을 높이는 게 선거에서 유리하다면 뭐 하러 당원의 뜻은 묻는가. 그냥 일반여론조사만으로 결정하면 되지 않겠는가. 전당대회라는 것도 할 필요가 있을까. 당 공식 기구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여 정하면 그뿐 아닌가.
국민의힘이 고민해야 할 건 일반여론조사 비율을 얼마나 높여야 할까 하는 따위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새 지도부를 꾸리든 국민의힘이 재기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국민의힘이 고민해야 할 건 그 ‘길 없는 길’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길을 찾자면 무엇보다도 국민의힘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성찰해야만 한다.
국민의힘의 문제는 두 가지가 없다는 점이다. 하나는 철학의 부재다. 철학이 없으니 투철한 신념과 투지도 생길 리 없다. 도대체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모르긴 해도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국민은 물론 국민의힘 구성원들조차 모르고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선거에 지자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문제는 외부에서 훈수한다고 해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찾아내지 못한다면 외부에서 조언하더라도 백약이 무효다. 국민의힘에 인물이 없는 것은 철학의 부재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누군가 새로운 기치를 세우고, 뜻을 모아 나가야만 비로소 길 없는 길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새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에 없는 또 한 가지는 문학적 상상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그건 노무현의 문학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소신과 신념, 그리고 뚝심이 바탕에 있었지만,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문학적 상상력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바보 노무현’에게서 배워야 할 건 바로 그 문학적 상상력이다.
국민의힘은 더 처참하게 무너져야 한다. 아예 폭삭 망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의지와 결심이 아니라 실제로 죽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사는 길, 곧 ‘길 없는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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