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대비 엔화가치 1%p 하락시 한국 수출가격은 0.41%p ↓
내수는 한계...수출 경쟁력 제고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둬야
엔화 가치가 점점 추락하더니, 지난달 29일에는 급기야 달러당 160엔까지 떨어졌다. 1990년 4월 이후 무려 34년 만이다. 1년 만에 엔-달러 환율이 130원에서 160원대까지 급등했으니, 엔화가치는 무려 25%나 폭락했다. 이른바 ‘슈퍼 엔저’ 시대의 도래다.
슈퍼 엔저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일본 정부와 일본 은행의 개입으로 다소 진정세이긴 하지만, 장기 추세를 바꾸긴 어려워 보인다. 미국이 계속 기준금리를 5.25~5.5%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계속 제로 금리(0~0.1%)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앞으로도 미국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낮고, 일본은 낮은 물가상승률 대응과 장기 불황 극복을 위해 금리를 올릴 유인이 없어 보인다.
슈퍼 엔저는 한국 경제, 특히 수출에 있어서 큰 위협요인이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주력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선박, 기계류 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경쟁 정도를 나타내는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는 69.2로 미국 68.5, 독일 60.3, 중국 56.0 등 주요 경쟁국보다도 높다.
시장의 포지션도 비슷하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저가 제품 시장이 아니라 고품질 시장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슈퍼 엔저 현상으로 일본 제품의 수출 가격이 저렴해지니 상대적으로 일본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작년 도요타 자동차가 일본 기업 최초로 영업이익 5조엔을 달성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악재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작년 1%대 저성장을 기록하는 등 성장동력이 많이 하락했다. 그렇다고 반등 요인이 뚜렷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안으로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 규모가 점점 위축될 우려가 높고, 밖으로는 중국의 매서운 추격,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원자재 가격 급등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어려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품질 경쟁력을 확보한 일본의 가격 경쟁력 상승은 우리 제품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1%포인트 내리면 한국의 수출가격은 0.41%포인트, 수출물량은 0.20%포인트 하락한다고 한다. 이미 엔화 가치가 1년 만에 25%나 내렸으니, 언제 이런 분석이 현실화 될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아직은 현실화되진 않았다. 반도체 수출 회복 덕분에 올해 1분기 1.3%의 깜짝 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반도체 기업의 혁신, 시장의 호황이 있었지만, 미국의 대 중국 제재 덕도 있었다. 게다가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은 여전히 호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무역수지는 아직도 적자다. ‘반도체 착시’에 속아 우리 경제를 낙관적으로만 분석하면 안되는 이유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의 희망은 수출이 사실상 유일하다. 저출산으로 내수 시장 성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출 경쟁력 제고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처사다.
한때 세계 최강대국 미국 경제를 넘보던 일본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진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1985년 플라자 합의였다. 이후 엔화가 가치의 급등으로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현재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 엔화가 플라자 합의 이전으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슈퍼 엔저의 공습이 예정된 지금, 과연 우리에게 실효성 있는 대책이 있는지 점검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