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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윤 대통령이 취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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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윤 대통령이 취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7.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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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수사 외압 참사조작 등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논쟁
자유를 보편적 가치로 공유하기 위해선 신뢰 전제돼야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전 국회의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전 국회의장 ⓒ연합뉴스

국제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고물가 행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가부채와 가계부채의 누적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로부터 고물가와 소비 부진이 비롯되고, 그게 다시 세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끝없이 이어지는 도발로 안보도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더 위태로운 건 국민이 안보 위협에 둔감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정치권은 민생과 안보 위기를 외면한 채 정쟁에만 골몰하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 모습은 막말과 고성으로 특징지어지는 대한민국 국회의 부끄러운 실상을 유감없이 드러낸 현장이었다. 여야 의원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를 조롱하며 제압할 것인가에만 몰두했을 뿐 이해와 의견의 조정으로서의 정치는 보여주지 못했다. 거기에 차원 높은 유머나 반박할 수 없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는 자리할 수 없었다. 하기야 한국 정치에서 그런 걸 기대하는 것이란 연목구어에 지나지 않긴 하다.

그건 그렇고 이날 쟁점이 되었던 사안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한다. 쟁점은 크게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 발언 논란 두 가지다. 우선 짚어볼 건 두 사안이 고성이 오가는 정쟁 거리가 될 만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채 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은 여권의 주장대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공수처의 수사를 지켜볼 일이라는 점에서 정쟁으로 몰아갈 사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도 장삼이사의 술자리 안줏거리가 될 만하기는 하여도 정치권이 언쟁을 벌일 사안은 못 된다. 그런데도 왜 이와 같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논쟁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한가운데에 윤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필자는 윤 대통령의 명 취임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어느 대통령도 자유를 언급한 적 없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자유를 강조한 것은 예사롭지 않았고, 그래서 윤석열 시대를 대망한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윤 대통령이 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철학적 토대가 닦인 가운데 자유를 역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그는 자유의 철학적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꼽았다. 그건 정확히 핵심을 찌른 것이었다. 반지성은 다중의 폭력으로 나타나고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그는 반지성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 보편적 가치는 바로 자유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자유를 보편적 가치로 공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국가 지도자로서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했다. 투명하지 못한 탓이다.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이 불거진 것도 그래서다. 그리고 의혹이 눈덩이 구르듯 시간이 갈수록 커진 것은, 그것이 비록 일정 부분 민주당의 정치적 선동의 영향 때문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윤 대통령 자신이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채 상병 사건 외압 특검에 대해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찬성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윤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음을 말해 준다.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과정과 진상을 국민 앞에 밝혀야 했다. 온갖 억측이 난무할 때 윤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기어이 특검 찬성 여론을 높이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격노’가 실재했었는지를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대통령실은 그런 건 없었다며 부인했지만 그걸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민주당 한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대통령의 격노가 없었다면 왜 대통령실은 격노했다는 보도를 바로잡으려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니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만일 ‘격노설’이 사실이라면 이는 윤 대통령이 대단히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라는 의미가 된다. 그건 자유를 외친 대통령의 이미지와는 크게 어긋난다. 어쩌면 검사로 한평생을 지낸 윤 대통령은 권위주의 문화가 몸에 배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그가 깊은 사유 끝에 자유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신념으로 삼은 결과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피상적인 사고와 누군가로부터 조언받은 결과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 회고록으로 촉발된 ‘이태원 참사 음모론’은 윤 대통령의 ‘자유’가 매우 빈약한 토대 위에 있는 것임을 방증하는 게 된다. 김 전 의장이 회고록에서 대통령과의 사적 대화를 공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윤 대통령이 실제 음모론을 말했다면(김 전 의장이 애써 없던 일을 말할 이유가 있을까?) 윤 대통령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은 수준에 있음을 말해 준다. 자유는 독립적 사고의 주체로서만 사유 가능한데 음모론에 귀를 기울였다면 자기 생각의 주인으로서 사고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 과장과 거짓도 서슴지 않는 저급한 유튜브 방송에 휘둘린 꼴이니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그러지 못하면 한 단계 더 높이 도약하는 건 기대할 수 없다. 국가 지도자로서 대통령은 그 새로운 질문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여 찾아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 책무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온갖 논란의 중심에 서 있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도 넘는, 정쟁을 위한 정쟁 유발을 모르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를 수령으로 받들면서 이재명 방탄을 위해 국정을 농단함으로써 빚는 참담한 사태를 국민도 알고 있다. 이 대표 수사와 관련된 검사 탄핵은 군홧발로 온 나라를 짓밟는 점령군의 무참한 행태 그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문제는 윤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이 벌이는 참극은 그것대로 문제지만 그로 인하여 국정 운영의 중심에 있는 윤 대통령의 책임이 가려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이제라도 취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취임 당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자유의 참 의미에 대해 깊이 사유함으로써 나라를 이끌 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이 지경에서라도 대한민국이 희망을 꿈꿀 수 있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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