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맹은 지나친 공손은 예의가 아니라며 교언영색을 경계
“민주당의 아버지, 집안의 큰 어른”이라 불리는 게 수치
“깊은 인사는 영남 남인의 예법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명으로 최고위원에 임명된 강민구 대구시당위원장이 지난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집안의 어른으로서 이 대표가 총선 직후부터 영남 민주당의 발전과 전진에 계속 관심을 주셨다”며 “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 대표”라고 말하고 이재명을 향해 허리를 굽혀 구설에 오르자 해명이랍시고 올린 글이다.
남인은 서인에 맞서 예송논쟁을 벌였던 조선시대 붕당의 하나로 선조 때 동인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신권을 강조한 서인에 대해 왕권을 강화하려 한 온건파로 이언적과 이황의 학문을 추종했다. 남인은 서울·경기 지역에 거주하며 모인 근기 남인과 대구·경북 지역에서 활동한 영남 남인으로 다시 구분되는데 영남 남인들은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인 주자학을 기반으로 학문의 방향을 설정했다.
주자학은 공자와 맹자를 도통(道統)으로 삼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학은 예(禮)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도(道)가 예를 통해 드러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예가 바르지 않으면 선비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한편 지나친 예는 선비의 도가 아니라고 경계했다. 공자와 맹자는 권력자에 아부하기 위해 “이재명은 민주당의 아버지” 같은 아첨의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며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것을 예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공맹은 과공비례(過恭非禮) 즉 지나친 예는 예의에서 벗어난다고 가르친다. 과공은 공자가 말했고 비례는 맹자가 말했다.
공자는 과공을 설명하며 교언영색주공 좌구명치심(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이라 하여 “말솜씨가 좋고, 얼굴빛을 잘 꾸미며, 공손함이 지나친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운 일로 여겼는데, 나 역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경계했다. 교언영색에다 주공(足은 발 외에 지나치다는 뜻도 있음 즉 지나친 공손함)은 자신의 본마음을 감추는 것이니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기 마음을 왜곡하는 비굴한 행동이며 나아가 상대방을 기만하는 행위다.
맹자는 비례를 논하며 예가 아닌 예를 하지 말라고 꾸짖는다. 이루장(離婁章)편을 보면 비례지례 비의불의 대인불위(非禮之禮 非義之義 大人不爲)라 하여 예가 아닌 예와 의가 아닌 의를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과공과 비례를 연결시켜 성어로 만든 사람은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이천(伊川) 정(程)이라는 사람으로 '공본정례 과공즉비례지례(恭本定禮 過恭則非禮之禮), 즉 공손함은 본디 예지만 지나친 공손은 예가 아니라고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뒷받침했다.
예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며, 아첨이란 ‘남의 마음에 들려고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짓’이다. 어떠한 예도 보편적인 도리, 상식을 벗어나고 어긋나면 그 또한 아첨으로 보이게 되니, 바로 예는 상황에 맞아 절도가 있어야 하므로 예에 절을 붙여 예절(禮節)이라 하는 것이다. 공자가 교언영색주공을 두고 치심(恥心)이라 한 것은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기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목전의 이익을 위해 자기를 포기함이니 어찌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의미다.
강민구는 “이재명은 아버지” 발언을 한 이유를 “이 대표님께선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총선 직후부터 영남 민주당의 발전과 전진에 계속 관심을 가져주셨다. 국민의힘이 영남당이 된 지금, (이 대표는) 민주당의 동진전략은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기에 그 첫 발을 이 대표께서 놔주신 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동진전략의 아버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돼야 한다. 김대중이야말로 민주당의 ‘큰 어른’이자 동진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수많은 발을 내디딘 사람이다. 그 결실로 훗날 김부겸 등이 31년만에 대구에서 당선됐다. 이재명을 집안의 큰 어른이라 칭하며 동진전략의 효시처럼 말하는 것이야말로 ‘교활한 언행과 잘 꾸민 얼굴빛’이다.
이미 민주당은 김준혁이라는, 퇴계 이황을 성지존이라고 조롱한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김준혁은 2022년 2월 출간한 ‘변방의 역사 2권’에서 이황에 대해 “성관계 방면의 지존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승된 설화를 보면 퇴계 이황의 앞마당에 있는 은행나무가 밤마다 흔들렸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주장했다가 유림의 뭇매를 맞고는 성균관을 찾아가 사과했다. 이황은 영남 남인의 정신적 상징이다. 비굴과 아부와 아첨이 영남 남인의 예법이라고 강변한 강민구를 이황 선생은 어찌 생각할지.
채근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참부훼사 여촌운폐일 불구자명(讒夫毁士 如寸雲蔽日 不久自明) 악한 말로써 남을 헐뜯는 사람은 마치 조각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과 같아서 오래지 않아 저절로 밝아지고, 미자아인 사극풍침기 불각기손(媚子阿人 似隙風侵肌 不覺其損) 즉 아첨하고 아부하는 자들은 마치 문틈으로 스며들어 살갗에 닿는 바람과 같아서 그 해로움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강민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아버지라 부를 때 입이 찢어져라 좋아했던 이재명이 읽어야 될 문구다. 강민구 같은 자들의 말을 듣기 좋아할수록 서초동을 거쳐 의왕으로 가는 길은 더욱 활짝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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