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는 고가여야 하고 식량은 안보? 1980년대식 사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는 민중이 아니라 창조적 소수
지난 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87년 체제의 함정에 빠져 있으며, 그 바람에 맹목적 정치 지향이 늘 합리적 이성을 압도하는 게 우리 현실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87년 체제란 다른 말로 하면 80년대의 사고를 의미하며, 그런 점에서 87년 체제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함은 80년대 사고의 틀 속에 갇혀 있음을 뜻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철학이 지향하는 바는 늘 생각의 확장과 고도화다. 문명의 진화와 진보는 생각의 확장과 고도화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생각이 확장하고 고도화하지 못하면 사회는 정체하고 나아가 퇴화한다. 인류 역사를 보면 어떤 문명은 진보를 거듭하는가 하면 어떤 문명은 사라졌다. 문명이 퇴화하고 급기야 사라지는 것은 그 문명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 틀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틀은 늪과 같아서 빠져나오려 할수록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든다. 그만큼 생각의 늪은 무서운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가 “쌀값과 한우 값이 떨어지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주문한 것은, 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양곡관리법(양곡법)’과 ‘한우산업지원법(한우법)’을 22대 국회에서 다시 입법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그는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식량 자급 문제는 식량 안보 문제로 이어지는 중요한 의제”라며 “정부가 즉각 안정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우와 관련해서도 “한우 가격이 3년 전 도매가격 대비 30% 떨어졌다. 소 한 마리 키워 팔면 마리당 140만원 정도 손해 보는 셈”이라며 “사료값은 오르는데 소값은 떨어지니 한우 농가가 다 망하게 생겼다”고 했다. 이런 인식은 이 대표만이 아니라 민주당, 나아가 좌파 진영 전체가 공유하는 것인데, 이런 인식이야말로 생각의 늪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이 양곡법에 집착하는 것은 물론 농민의 표를 의식하는 것이겠지만, 거기에는 농민은 우리 사회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약자이며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 농민은 약자이므로 사회가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사주고, 심지어 가격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도시의 서민에 그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민이 도시 서민보다 약자인가. 기존 인식은 그러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이미 오래전부터 농민보다 도시 서민이 더 약자다. 그런데도 농민을 보호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생각의 늪에 빠져 있는 데서 비롯된 생각이다.
식량 안보라는 개념도 그렇다. 이는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한 채 수입에 의존할 경우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삼을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정관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식량 수출국 입장에서는 시장 확보가 관건이다. 사실 자급자족보다 수입이 최고 효율의 식량 확보에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식량 전쟁이 벌어질 경우 대한민국 안보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게 기본 상식”이라고까지 말했다. 그가 말한 기본 상식이란 바로 고정관념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한우 값이 떨어져 문제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왜 소비자는 생각하지 않는단 말인가. 경제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있는 존재는 소비자다. 공급자 중심으로 사고하면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한우 값이 떨어지면 소비자에게는 이익이다. 서민들은 비싼 가격 때문에 좀처럼 한우를 먹을 엄두도 못 내왔던 게 저간의 사정이다. 그런 걸 법으로 강제하여 한우 값을 보장해 준다는 것은 소비자 전체에 부담을 돌리는 꼴이다. 이 대표는 “사료값은 오르는데 소값은 떨어지니 한우 농가가 다 망하게 생겼다”고 했는데, 그건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그럼 시장에서 도태되는 게 정상인데 법으로 정부가 지원하여 살려놓으면 경쟁력 있는 축산농가마저 힘들어진다. 이 대표는 한우법에 대해 “새로운 사고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 대표야말로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경제는 생태계”라고 지적했는데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 중심의 사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또 “정부가 정치에 매달려서 민생 경제를 챙기지 아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고도 했다. 이 대표야말로 경제를 가지고 정치를 함으로써 민생 경제를 망치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좌파는 그들이 진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생각의 늪에 빠져 있는 한, 그리하여 80년대 사고에 갇혀 있는 한 그들은 진보는커녕 수구일 뿐이다. 이미 확립된 생각은 고정관념이다. 한 집단이 어떤 인식, 곧 생각을 확립하는 순간 그런 생각은 기존 인식이 되고, 거기서 벗어나 생각을 확장하고 고도화하지 않으면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 하물며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시대에 과거 인식에 집착하는 사고를 진보라 할 수 없다.
좌파는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주체를 민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민중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는 창조적 소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K팝, K드라마, K뷰티 등 한류 열풍을 보라. 한류는 생각의 확장과 고도화가 가능했던 창조적 소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좌파가 주장하는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이란 기존 질서를 뒤집을 때, 곧 물리적 혁명기에만 주체였을 뿐이다. 그런데 실은 그나마도 온전한 실제 주체가 아니라 주체로 보였을 뿐이다. 혁명의 저변에는 새로운 생각이 흐르고 있었고, 거기엔 기존의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 생각을 확장하고 고도화한 창조적 소수의 작용이 있었다.
우리가 사회가 진화하고 진보해 나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각에서 새로운 생각으로 건너가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건너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비법이다. 이는 비단 좌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파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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