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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민주당이 양곡법 고집하는 이유, 북한식 농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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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민주당이 양곡법 고집하는 이유, 북한식 농지개혁?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5.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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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해방공간 북 김일성 정권의 무상 몰수 무상 분배를 아직도 신봉
수요 없는데도 공급 강제하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가능
공공비축미 보관창고 ⓒ연합뉴스
공공비축미 보관창고 ⓒ연합뉴스

‘1946년 3월의 북한 토지개혁은 남부에 특히 강한 충격을 주었다. … 북한과 같은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남부 각 도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는 한국 현대사를 왜곡한 좌파 수정주의 역사의 대부 브루스 커밍스가 그의 저작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남북한 농지개혁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다. 

“에레기 순 개자석덜아, 고런 드런 눔에 법령 맹그니라고 사년씩이나 그리 삐대고 개지랄쳤냐! … 요것이 지주눔덜 땅장사 시켜주자는 것이제 농지개혁은 무신 빌어묵을 농지개혁이냔 말여, … 참말로 요거 속에서 천불이 솟아 더는 못참을 일이시. … 싹 떼려뿌식어뿔고 엎어부러야제 워쩨. … 이북서 헌 것보담 더 나슨 방도는 아니드라도 같은 방도는 써야제. 요것은 아그덜도 다 기가 차서 웃을 일인디, … 나라 다시린다는 눔덜이 다 지명대로 못살고 죽을라고 환장들을 혀서 짚북데미에 불을 쳐질르는 것이네, 시방.”

이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묘사된 농민들의 농지개혁에 대한 반응이다. 농민들은 대한민국의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의 농지개혁법에 대해 격한 분노를 쏟아냈으며, 작가 조정래는 그걸 위와 같이 묘사한 것이다. 커밍스나 조정래 둘 다 해방정국에서 농민들이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농지개혁이 남한의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의 농지개혁보다 나은 것이라고 인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는 곧 공산혁명이 시대적 요구였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농민들, 곧 소작인들 대부분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대해 현실성도 없는 공산주의자들의 선전 선동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 아니라 몰염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인 벌교 순천 등지를 찾아 수많은 증언을 채록한 바 있기에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80~90년대 좌파 수정주의 역사 연구자들은 남북한의 농지개혁을 단순 무식하게 비교하면서 북한 정권의 정당성 및 정통성을 대중에 심으려 했다. 그리고 실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오늘날 북한 체제가 우월하다고 믿을 사람은 극히 일부를 빼고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 수정주의 연구자들은 해방정국에서 정당성은 북측에 있었다는 인식을 확산해오고 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해방 당시 시대적 요청은 공산혁명이었을까.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에 대해 무지했던 대중은 사회주의를 더 선호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공산혁명이 역사의 순리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진행되는 중에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실행에 옮겼다. 미국과 합의 이전에 북한 지역을 공산화한 것이다. 소련 점령군이 그렇게 한 것은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보다는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여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기 위해 북한 지역을 전진기지로 삼으로 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커밍스나 조정래는 무상몰수 부상분배를 매우 긍정적으로 기술했지만 북한 토지개혁은 대중을 기만한 것이었다. 지주들에게서 농지를 무상몰수한 것은 맞다. 그러나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준 건 아니었다. 무상분배는 허울뿐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소유권을 준 게 아니라 경작권만 준 것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대리 경작도 할 수 없었으니 사실상 농민들은 땅에 묶이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경작권이라고 했지만 농지를 떠날 수 없다는 점에서 권리가 아니라 의무만 진 것이었다. 북한 지역의 지주들은 농지는 물론 집마저 빼앗긴 채 쫒겨났으며, 소작인들은 사실상 중세 유럽의 농노와 같은 처지로 전락했다.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였으나 여야 이견이 크다는 이유로 김진표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아 21대 국회에서는 자동 폐기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민생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다시 꺼낼 카드인 건 분명해 보인다. 

서두에 북한의 기만적인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농지개혁을 언급한 건 민주당의 양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이 선포하여 발효될 경우 사실상 북한식 농지개혁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농민을 사실상 ‘농노’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양곡법 개정안은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쌀 소비가 갈수록 줄어드니 쌀이 남아도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쌀 공급이 줄어야 한다. 시장에 맡긴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남아도는 쌀이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줄 리 없고, 따라서 농민들은 쌀을 대신할 다른 곡물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해주면 농민 입장에서는 비록 이익이 크지 않더라도 쌀을 생산할 유인이 충분하다. 

그런데 소득을 보장해주는 이 제도가 고약한 게 농민을 논에 묶어두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이다. 농민 입장에서는 다른 작물로 대체하는 건 하나의 모험이다. 그러니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농민이 아니라면 당연히 안전한 쌀농사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농민이 더 나은 사업을 찾는 것을 이 제도가 막는다는 점이다. 결국 농민이 논에 묶이게 되고, 그건 농노와 같이 농지를 떠나지 못하게 되며, 그런 결과를 낳은 북한식 농지개혁과 똑같은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수요가 없는데도 공급을 강제하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었다. 명령경제 체제에서는 수요에 맞는 합리적인 생산을 하는 게 아니라 계획 당국의 명령에 따른 책임량을 생산한다. 그런 일이 시장경제를 한다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판이다. 남아도는 쌀을 구매하고, 그것을 보관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는 점은 그만두고라도 농민을 땅에 묶어놓고, 필요 없는 작물을 할당받은(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매입해준다면 생산량은 할당량이나 다름없다) 책임량을 생산토록 하는 일 자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민주당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북한식 토지개혁이라는 지적에 시대착오적인 색깔 시비라고 펄쩍 뛰겠지만, 민주당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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