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책이든 ‘민생’이라는 외피를 입히기만 하면 무사 통과
정부 역할 커지면 필연적으로 개인 자유 억압하며 시장 왜곡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2일 국회 최고위원회에서 “고유가 시대에 국민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민주당은 지난해 유동적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횡재세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국민께서는 유가가 오를 때는 과도하게 오르지만 내릴 때는 찔끔 내린다는 불신과 불만을 갖고 있다. 정부가 막연하게 희망 주문만 낼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로 국민 부담을 덜어야 한다”며 횡재세 도입을 제안했다. 국회 압도적 다수의 민주당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이 대표의 제안이라는 점에서 횡재세 입법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횡재세 법안(‘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소상공인 보호법) 일부개정안’을 낸 바 있다. 이 대표가 그걸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지난해나 이번이나 횡재세가 겨냥하는 대상은 국내 정유업체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사태‘까지 겹치면서 원유가격이 오르면서 정유업계가 이익을 내자 그걸 곱게 보아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이 유가가 오를 때는 과도하게 오르지만 내릴 때는 찔끔 내린다는 불신과 불만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불신과 불만이 정당한지도 의문이지만 설혹 정당하다 하더라도 과세가 정당하냐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대표는 국내 에너지 기업들이 원유가격이 오를 때는 그걸 과도하게 반영하고 내릴 때는 적게 반영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유업계는 적자를 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정유기업들의 적자가 총 1조원에 이른다는 점은 이 대표 주장이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정유업체들이 적자에서 벗어나 이제 숨통이 트일만 하자 횡재세라는 허무맹랑한 카드를 집어 든 것이다. 또, 원유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정유업체들이 이익만 낸다는 보장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유가격 상승분을 반영하면 소비가 위축되어 정유기업의 수익이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의 주장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 대표의 민주당이 횡재세를 다시 꺼내는 데 빌미를 준 것은 정부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3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와 한국석유공사, 한국도로공사, 농협경제지주 등 알뜰주유소 운영사, 대한석유협회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석유가격 안정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물가 안정이 곧 민생인 만큼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부담이 국민들께 과도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관리해달라”고 요청한 게 그것이다. 말이 좋아 요청이지 사실상 압박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각 기업으로서는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기업의 팔을 비틀어 물가를 ‘관리’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70년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 21세기에 벌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자유’를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가 그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정부의 개입은 정책에만 한정되어야 하는데 이렇듯 기업을 압박하니 이 대표가 얼씨구나 하고 “정부가 막연하게 희망주문만 낼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로 국민 부담을 덜어야 한다”며 횡재세를 들고 나온 것이다.
횡재세는 명백하게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초과이익을 낸 기업들로부터 돈을 걷어 서민 부담을 완화해주는 데 쓴다는 것은 명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런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미 법인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거기에 더해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로, 위헌이며 투자를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입힌다는 지적 등은 그만두고라도 정부의 역할을 왜곡함으로써 시장경제를 훼손하고 궁극적으로 유사 사회주의로 흐를 우려가 크다.
오늘날 세계는 강력하고 큰 정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짐작건대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에도 사회주의라는 망령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은 게 원인이 아닌가 싶다. 아니 인간은 구석기 시대에 형성된 사회주의 DNA를 타고 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서 “추구 가능한 극대 자유를 쟁취하기를 원한다면 정부에 어떠한 역할을 부여해야 할까?”라고 물으며 “200년 전 아담 스미스가 제시한 답보다 더 잘 쓰기는 어렵다“고 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정부의 역할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다른 독립된 사회로부터 침입이나 전쟁으로부터 사회를 방어하는 임무다. 둘째는 가능한 한 사회구성원 간의 억압, 불법을 막는 일로서 법질서 확립이다. 셋째는 공공사업과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프리드먼은 이 세 가지 정부 역할 중 “세 번째 정부의 의무는 가장 문제가 많은 항목”이라며 “스미스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설파한 이 대목은 그러나 그 후에 돼먹지 않은 수많은 정부 활동을 정당화시켜주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견해로도 자유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정부 활동을 올바르게 지적했다고 보지만 이것이 정부 권력의 무한한 확대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할 줄이야 누가 미처 알았으랴”라고 개탄했다.
민주당의 포퓰리즘이 위험한 이유는 횡재세와 같은 반시장적 발상이 법제화된다면 어떤 정책이든 ‘민생’이라는 외피를 입히기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생겨 정부 역할을 무한정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역할이 커지면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며 시장을 왜곡하게 된다. 그 극단이 바로 사회주의다. 과거 나타났던 사회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주의를 향해 가거나 사회주의 요소가 힘을 받으면 사회주의의 폐해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문재인정부 시절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민주당의 포퓰리즘 폭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적절히 제어하지 않으면 스스로 커지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건 마치 어떤 조직을 만들면 조직을 만든 목적과는 상관없이 조직의 유지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부 역시 하나의 조직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분명하다. 바로 구성원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목적은 실종되고 국가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고, 거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지금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속성상 스스로 몸집을 불려 나가려는 정부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부 덩치를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정부의 덩치가 커진다는 것은 정치권의 권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하자는 대로 해서는 정부를 제어할 수 없다. 정부 제어는 국민이 정치인을 제어할 때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