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도 소속 노조도 안반겼던 사업 반 강제로 밀어붙여
사회적 합의 일방 파기 복지 보장 유지한채 임금 인상 요구
노·사·민·정 합의에 의해 이른바 ‘상생형 일자리 사업’으로 만들어진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성공 여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2019년 GGM 설립 시 합의(협약)는 차량 누적 생산 35만 대 달성 전까지는 노동조합 대신 상생협의회를 통해 임금 등 근무 조건을 협의하고, 대신 정부와 광주시가 주거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12만대 생산 시점인 최근 전체 근로자 660여 명의 22%인 근로자 140여명이 노동조합 결성과 함께 단체교섭권 확보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노조가 민주노총 중에서도 강성으로 유명한 금속노조에 가입한 데다가 금속노조가 GGM 근로자들을 상대로 조합원 가입 활동을 펴고 있기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합원 수가 전체 근로자 과반이 되면 금속노조가 대표성을 인정받아 사측과의 단체교섭이 가능해진다. 이 경우 GGM은 민주노총 중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금속노조를 상대해야 한다.
GGM의 현실을 보며 ‘사회적 합의’라는 게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적인 강제가 없으므로 언제든지 어느 일방이 이의를 제기하며 깨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합의’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합의 당사자들이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약속을 끝까지 지킬 때만 합의는 유의미하다. 그런데 약속을 깨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법과 현실 간 괴리가 있을 경우 특히 문제가 생긴다. GGM 상황이 그걸 보여준다.
GGM 노조의 금속노조 가입으로 노사상생협의회를 통한 임단협이 무력화되고 ‘무노조 무파업 약속’이 깨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노조 측은 “광주형 일자리 관련 사회적 합의 어디에도 ‘무노조·무파업’이란 문구는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노조 측은 또 “노조가 없을 때는 상생협의회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지만 노조가 결성되면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며 “‘상생협의회 결정 사항 유효기간을 누적 생산 35만대 달성 시까지 한다’라는 문구를 무노조 합의로 해석한다면 반헌법적”이라고 주장한다(한겨레신문 5월 19일 자). 이는 당초 합의가 ‘상생협의회 결정 사항 유효기간을 누적 생산 35만대 달성 시까지 한다’는 애매한 문구로 법을 우회한 결과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노조, 무파업’을 협정으로 명기할 경우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제안된 건 2014년이었다. 하지만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낮은 임금과 무파업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어떤 민간기업이 투자하려 할까가 문제였다. 그래서 지지부진하다가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며 사업이 본격화됐다. 문 정부는 이 사업을 2017년 국정 과제로 선정하며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시장의 원리와는 담쌓았던 문 정부이기에 우리 사회의 문화적 토양과는 거리가 있는 ‘사회적 합의’가 구미에 당겼을 법하다.
참여를 제안받은 현대자동차는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현대차 노조도 반발했다. 현대차로서는 이 사회적 일자리 기업이 생산할 ‘캐스퍼’라는 경차가 사업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국내에서 생산라인을 늘려 노사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싶지 않았기에, 노조로서는 동종 업계에 반값 임금 생산직이 생겨나는 건 자기들의 임금이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밀어붙이는 가운데 현대차가 계속 버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밀고 당기기 끝에 유례가 없는 노사민정 합의에 의해 광주형 일자리 사업으로 GGM이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합의가 지켜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니 합의는 사실상 이미 깨졌다. 노조가 만들어지고, 더욱이 금속노조에 가입했으니 ‘무노조’라는 암묵적 합의는 없던 일이 되었고, 따라서 ‘무파업’이라는 암묵적 합의도 없던 일이 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합의 파기만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 일반 기업과는 달리 GGM은 주인 없는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기업 설립 초기 광주시장이 경영자 역할을 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걸 알 수 있다. 지금은 현대자동차 기획실장을 했던 윤몽현 대표를 영입하여 경영을 맡기고 있지만, 윤 대표가 전권을 갖고 기업을 경영해 나갈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앞으로 금속노조가 대표권을 갖고 사측(사실 그 정체성도 분명치 않지만)과 임단협 협상에 나서서 지방자치단체의 주거복지 보장 등은 유지한 채 동종 기업 근로자의 높은 임금을 대비시키며 임금인상을 요구했을 때 대부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근로자 임금이 높아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생산성에 비추어, 나아가 채산성에 비추어 과도할 경우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기업은 투철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기업가가 사회 공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창출해내기 위해 만드는 것이고, 그럴 때 비로소 기업이 일자리 창출과 세금 납부를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는 기업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면,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인위적으로 기업을 만드는 것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게 정도이자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바닥에 흐르는 기본 철학은 ‘자생적 질서’다. 시장은 누가 기획하고 계획을 세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저절로 형성된 것이라는 얘기다. 인위적 질서는 결코 자생적 질서를 넘을 수 없다. 인위적 질서의 극단이 바로 사회주의 계획경제다. 시장경제를 한 자유 진영이 번성한 데 반해 계획경제의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은 그래서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치라는 건 보편성을 지닌 것이므로 거시적인 측면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미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해 ‘사회적 합의’라는 인위적 질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GGM이 비록 사회적 합의에 의해 설립된 것이지만, 시장 질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데 GGM이 그럴 수 있을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광주시가 주도하고, 직원 대부분이 광주 사람인데도 ‘캐스퍼’가 광주 지역에서 가장 안 팔린다는 사실만 보아도 사회적 합의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그래서 시장 질서에서 살아남기 어려워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긴 짐이 하나 더 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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