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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참신'했던 추미애는 왜 저렇게 추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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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참신'했던 추미애는 왜 저렇게 추해졌나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5.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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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DJ 발탁정치권 입문 당시 상대 진영 설득 노력 돋보여
그랬던 추미애가 당심은 명심이라며 낯뜨거운 추태라니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 ⓒ연합뉴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 ⓒ연합뉴스

지난 16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총회에서 재적 과반 득표로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로 우원식 의원이 선출되자 모든 언론이 ‘이변’이라고 보도했다. 사실 추미애 당선자가 뽑힐 것이라는 게 민주당 안팎의 예상이었으나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재명 대표의 ‘전횡’으로 공천받아 당선된 ‘찐명’ 초선들이야 세상 물정 모른 채 득의양양했을지 모르지만 재선 이상의 의원들은 4년 후 총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추미애 후보가 선출된다면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당이라는 낙인이 더욱 선명해질 터이니 민심의 심판으로 인하여 자신이 4년 후 총선에서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에게 당보다는 자신의 금배지가 더 소중한 건 세상이 다 아는 일 아닌가.   

사실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 선출 과정은 민주당 의원들이 보기에도 낯 뜨거운 일이었다. 모두가 ‘친명’을 자처하는 가운데 2명의 후보자가 자진사퇴 방식이나 추 후보와 단일화하는 방식으로 ‘교통정리’가 되면서 이 대표가 국회의장까지 낙점하는 모양새가 되는가 하면, 나머지 두 후보도 서로 이른바 ‘명심’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꼴이라니. 특히 추 후보가 “당심이 곧 명심이고 명심이 곧 민심”이라며 이재명 대표를 파는 모습은 추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 후보의 과반 득표였다. 그때 추 후보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굳어지는 모습을 보며 문득 ‘참신했던 그 추미애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젊은 날의 그를 떠올렸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정치 신인 추미애는 정말 신선했다. 필자가 추미애를 처음 만난 건 그가 초선 의원 시절이던 90년대 말 국회도서관 건물 한 회의실에서였다. 그때 그곳에서 ‘제주 4‧3사건’ 관련 세미나인지 공청회인지 한 행사가 열렸다. 필자는 당시 제주 4‧3사건 관련 저서 저자로서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참석했었다. 그런데 수많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행사 자체를 무산시켰다. 이 행사는 제주 4‧3사건 관련 특별법 제정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의 일환이었는데, 그게 무위로 돌아가자 추미애는 필자에게 “참 어렵군요”하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추미애에게 느낀 건 초선 의원으로서의 의욕뿐만 아니라 진정성과 겸손함이었다. 그때 그는 참 정치인의 전형 같았다. 성실하고 진정성 있으며 가치를 달리하는 진영의 사람들에게도 진지하게 성의를 다하여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필자는 추미애에게 제주 4‧3은 수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얽힌 복잡한 사건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보수단체 인사들의 제주 4‧3에 대한 인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실제 제주 4‧3 사건은 간단치 않다. 본 칼럼에서 쓴 바도 있지만, 제주 4‧3 유족 중에는 희생자로 인정된 인물 중 ‘저 사람은 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인데 어떻게 희생자가 될 수 있느냐“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도 지금은 상당수 이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고, 대세에 눌리기도 하여 적극적으로 입을 여는 사람은 드물지만 90년대 말만 해도 ”살인 주동자와 적극 가담자를 희생자로 만드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특히 보수단체 인사들은 여기에 더해 제주 4‧3 사건 가담자들을 희생자로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추미애는 가능한 한 마찰을 줄이면서 해법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했다고 필자는 기억한다. 

이후에도 추미애는 필자에게 올곧은 정치인으로 각인되었다. 필자는 그가 97 대선 당시 대구에서 김대중 후보 선거운동에 나서며 ’잔다르크‘를 자처하던 모습을 보도를 통해 보며 감동했다. 지금보다 지역감정이 훨씬 심하던 시절 저돌적으로 유세에 나서는 그의 모습에서 필자는 지역감정을 넘어서려는 의지와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처럼 진짜 잔다르크 같았다. 노무현이 바보스럽고도 고집스럽게 지역감정에 맞서던 모습을 필자는 추미애에게서 보았다. 

그러나 세월지 지나면서 참신했던 추미애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갔다. 흔히 정치인이 나이가 들면 노회하다고 평가받곤 하는데, 추미애는 나이가 들면서도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노련함을 보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교활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그건 그가 그만큼 순정을 갖고 있었다는 반증일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단순 무지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법무부 장관 당시가 그랬다. 그는 보이지 않아야 할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대표 시절 아들 군 복무 특혜 시비와 관련 국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의 의혹 제기에 ”소설 쓰네“라는 혼잣말을 하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마치 ’같잖다‘는 듯 상대를 비웃는 듯한 태도였다.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해서도 신임 검사들을 모아놓고 ’말을 잘 들으면 될 걸 그러지 않는다‘는 의미의 말을 해서 물의를 빚은 바 있는데, 그 말이나 그의 표정에서 오만함이 묻어났다. 

참신했던 과거의 추미애와 가장 대비되는 것은 지난 총선에서 공천받기 위해 다른 사람 같으면 차마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이 대표에게 아부하며 이 대표를 메시아처럼 받드는 모습이었다. 정치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리며 젊은 시절 이래 평생 국회의원을 해왔으면서 무엇을 더 누릴 거라고 총선에 나섰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국가 서열 2위인 국회의장 한번 하고픈 욕심 때문이었겠지만, 실질적인 힘도 없는 국회의장을 마지막 타깃으로 삼은 것은 허울만 좆는, 하찮은 사람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름뿐인 알량한 국회의장 한번 해보자고 간도 쓸개도 다 빼버린 듯한 행동을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멀쩡하던 사람도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들어가면 사람이 이상하게 변한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국회의원직은 우리 사회에서 ’슈퍼 갑‘으로 통하는 권력의 자리다. 사람이 변하는 건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면서도 당사자 앞에서는 굽실거리는 권력의 맛을 보아서가 아닐까. 하지만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다. 추미애는 이제 그걸 깨달을 나이도 되었다. 아직 늙었다고 할 연령대는 아니지만 혹 ’노추(老醜)‘라는 비난을 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곧 다시 금배지를 달고 개선장군처럼 국회에 재입성하겠지만 부디 초선 시절의 그 참신함을 되찾았으면 한다. 거기다가 최다선 중진의원으로서 협치를 이끄는 원숙함을 보여준다면 국회의장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한 명예를 얻을 것이다. 부디 새로 태어난 추미애를 보았으면 한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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