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물가 선진국보다 누려 61%나 높은 이유
생산성 높이고, 유통망 혁신하려해도 정치권 반대 도루묵
한국이 부자나라가 된 것 같긴 한데, 나는 왜 먹고 살기 힘들지?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봤을만한 의문이다. 이에 대해 지난주 한국은행이 답을 내놨다. 우리와 선진국의 물가 수준을 비교해봤더니 우리의 의식주(衣食住) 물가가 적게는 23%, 많게는 무려 61%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부담까지 더하니 서민들이 늘 돈에 쪼들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매일 소비하는 식료품비부터 보면 선진국 평균보다 무려 56%나 높았다. 농림축산으로 한정하면 우리 물가가 2배 수준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약간 낮았는데 21세기 들어 물가가 폭등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밝힌 원인에 따르면 낮은 생산성과 시장 개방도다.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산성 증대효과가 있었어야 하는데, 우리는 정체되어 있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의류는 선진국보다 무려 61%나 높다. 원인은 브랜드 선호 현상과 고비용 유통구조라고 한다. 하긴 고가의 골프 웨어, 테니스 웨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현실을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체감상으로는 2배 이상 높다고 본다. 브랜드 선호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등에서는 아울렛 매장이 활성화되어 있어 브랜드 상품도 저렴하게 구입할 기회가 많다. 새 제품도 한국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아울렛이라고 가 봐도 그렇게 저렴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왜 한국 소비자만 글로벌 호구가 됐는지 점검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음은 주거비. 정말 살인적이다. 주거 안정이 되어야 가족들의 기본적인 삶이 안정되는데, 한국은 이 비용이 너무 비싸다. 서울 기준으로 10억원 미만 아파트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한국은행 수치상으로는 23%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소득수준을 감안해보면 이마저도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다. 대표적인 비교지표인 연 소득대비 집값(PIR)을 보면, 서울은 25.1로 싱가포르 18.2, 파리 17.8, 런던 14.8, 도쿄 14.4, 뉴욕 14.0보다 월등히 높았다. 꼬박 25년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근로자가 30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평생을 단 5년 치 월급으로 먹고 입고 애 키우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사교육비도 '할많하않' 수준이다. 작년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총 지출이 27조원이었다. 평균으로는 1인당 월 52만원, 고등학생의 경우엔 70여만원으로 껑충 뛴다. 중고생 2명 키우는 가정은 매년 1600만원이나 사교육비를 써야 한다. 한국에서 자녀 1명을 18세까지 키우는데 3억6500만원이 든다는 분석이 괜한 말이 아니다. 자녀 2명은 언감생심이다. 이러니 아이 낳기 두려운 나라가 된 것이다.
그나마 전기, 가스, 수도와 같은 공공요금이 선진국보다 36% 저렴하다. 그러나 천문학적으로 불어가는 공기업들의 부채를 감안하면 언제까지나 저렴한 요금을 지속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은 해결책으로 구조개혁을 제시했다. 생산성을 높이고, 유통망을 혁신하자는 것. 지극히 당연한 방향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으로 얼마나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실제 정책 개정 단계로 들어가면 정치적 반대 등에 막혀 도루묵이 되기 일쑤였지 않은가. 지금도 국민들이 싼 값에 책과 휴대폰을 사고, 저렴하게 물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제한돼 있다. 내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일도 여러 난관을 거쳐야한다.
정책 당국자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소비자인 우리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정치권도 움직이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다 우리 돈 나가는 일이다. 과거 자영업자들과 상생한다고 ‘통큰 치킨’을 금지시켰다가 결국 비싼 치킨 값만 치뤘던 경험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