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시가 어디예요?" 한자 독해 못해서 벌어지는 웃지못할 해프닝
유어행위→낚시, 우천시→비오면, 중식→점심 등 한글로 바꾸자
이달 초 뉴스에 “우천시가 어디예요?”라는 제목으로 어린이집 교사의 한탄을 담은 기사가 보도됐다. 요새 아이 부모들이 너무 공지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례를 보니 “oo를 금합니다”라고 하면 금지한다는 것인데 일부 학부모들은 ‘금(金)’으로 알고 좋다는 뜻으로 알아듣는다고 했다. 또 “우천시 oo로 장소 변경이라고 공지하면 ‘우천시에 있는 oo지역으로 장소를 바꾸는 거냐’고 묻는 분도 있다”고 했다. 해당 뉴스에서는 작년 tvN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한 H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제시한 사례도 소개했다. 그 교수는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에 ‘중식 제공’을 보고 학부모가 왜 중국 음식을 제공하냐”고 했고 “교과서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 반납하세요”라는 글을 보고 교과서를 사서 반납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진행자 유재석이 파안대소하는 사진을 함께 실었다. 요즘 영상에 익숙한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가정통신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사에 대한 댓글을 들어가서 보니 할 말을 잃는다는 탄식부터 저런 부모가 아이를 금쪽이로 키우고 교사에게는 갑질을 한다는 비난, 그리고 특정 계층의 정치적 성향까지 탓하는 댓글들이 많은 ‘좋아요’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학부모들만 이런 것이 아니다. 2022년 5월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모 논란의 중심에 선 변호사 출신 김남국 의원도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도 그는 바로 그해에 제9회 ‘국회를 빛낸 바른 정치언어상 바른 언어상’을 수상했다고 자신의 프로필에 올렸다.
이렇게 문해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한자문화권이니만큼 한자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오랜 기간 한글전용의 교육정책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왜 공지문에서 계속 한자어를 사용하면서 문해력을 탓하고 있는 것인가. 세종대왕의 훌륭함은 못 배운 사람들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도록 한글을 만들어주신 자상함에 있다. 정보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어 당시 사회의 정보비대칭을 해소해서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어려운 한문으로 정보를 독점하던 정보우월자(양반)의 기득권을 약화시키고 정보열등자(백성)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한자어로 권위를 보이려는 심리나 무의식적으로 한자어를 사용하는 습관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뉴스를 접하고는 전에 자주 걷던 한강 산책길에서 본 ‘유어행위금지’라는 팻말이 떠올랐다. 담당 공무원은 수고스럽게도 ‘游漁行爲禁止’라는 한자까지도 괄호 안에 함께 써 줬다. 그러나 그 노고가 무색하게 바로 옆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낚시금지’라고 하면 글자수도 적고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심심한 사과’도 젊은 세대의 문해력 문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제는 이 역시 한글 세대에게는 낯선 표현일 수 있다. 그냥 ‘깊은 사과’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뉴스에 보도된 사례에서도 ‘oo를 금합니다’ 대신에 ‘oo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면 더 나았을 것이다. ‘우천 시’는 ‘비 오면’이라고 쓰고 ‘중식 제공’보다는 ‘점심 제공’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에 반납하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사서 선생님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뉴스의 두 번째 사례를 국어교육과 교수가 제시했다는 점은 다소 의외이다. 국어교육과라면 문해력을 탓하기보다 한글을 다듬고 널리 보급해야 할 전공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학문적 연구나 전문 분야에서는 한자어가 필요하겠지만 공지문이라면 읽는 사람이 오해 없도록 쉽고 간단하게 쓰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