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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의 글로벌스탠더드]국회는 입법을 하지 말고 정치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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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의 글로벌스탠더드]국회는 입법을 하지 말고 정치를 하라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8.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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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박철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국민 삶과 무관한 법안 한달에 1000건씩 법안 발의하면 뭐하나
그 시간에 상대 당 의원이나 다양한 사람들 만나는게 유익할 것
지난 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총선에서 제22대 국회의원 300명이 확정된 이후, 양당의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개최되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총선 이후 4개월 만에 정당까지 진용을 새로 개편, 국회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체제를 갖추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22대 국회는 일을 제대로 잘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고민이 있다. 국회가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국회가 입법기관인만큼 입법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이다. 언론보도를 보면, 21대 국회에는 총 2만5858건의 법안이 발의됐고 최종 9063건이 처리되어 법안처리율은 36.6% 수준이라고 한다. 22대 국회는 개원 두 달 만에 법안 2289개를 발의했다고 한다. 한 달에 1000건씩 발의한 꼴이니까, 4년이면 4만8000건의 법률안이 발의될 기세다. 그런데 여야간 협치 여부를 알 수 있는 여야 공동발의는 전체 2000여 건 중에서 12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기사들을 종합해 보면, 아마도 22대 국회는 최소 3만 건이 넘는 법안이 발의되고 그 중에서 실제로 통과되는 법안은 1/3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국회를 보고 입법 활동을 활발히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경제정의실천연합이 1990년대 중반 15대 국회부터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정 평가를 실시했다. 이후 국회의원들의 양적 활동은 크게 증가했다. 국회의원들이 입법활동을 활발히 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방법은 입법 발의 건수를 늘리는 것일 것이다. 발의 건수를 늘릴 수 있다면, 내용은 몰라도 동료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당론으로 채택한 법안에 대해서는 법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없이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다. 이런 관행이 지속되는 한, 22대 국회는 이미 최악의 국회가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박철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박철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더 심각한 것은 22대 국회 개원 이후 지난 두 달여 동안 특검법 9건과 탄핵안 7건이 발의됐다는 점이다. 이 법안들은 기본적으로 국회통과를 가정하고 발의되었다기 보다는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법안들이다. 기본적으로 민생이나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과 관련한 법안들은 뒤로 밀려나고 정치법안들만 부각되면서 국회가 앞으로 여야간 투쟁의 장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원래 국회는 입법기관이기 전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변하는 ‘민의의 전당’이다. 민주주의의 발달 과정을 보면, 영국의 명예혁명에서부터 미국의 독립선언에 이르기까지 그 바탕은 민의가 집결되는 곳이 ‘의회’였다. 따라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의미에서 양당제를 채택한 많은 나라들이 ‘하원’을 통해 일반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 왔다. 우리나라는 양당제는 아니지만 국회가 민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민의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수적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 통합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실종되고 대립과 갈등만이 남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갈등비용은 연간 233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연간 GDP의 1/10 수준이다. 이러한 갈등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더 심화되었고, 아예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예전 민주화 시기에도 갈등은 있었지만 정치가 있었기에 중요한 순간마다 여야간 합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았다. 정치를 부활하기 위해서는 국회를 입법기관이라고 정의하기 이전에, 정치기관이라고 먼저 정의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법안 발의를 몇 건 했느냐가 국회의원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평가하면 국회의원들은 입법기술자가 되어, 알지도 못하는 법안에 이름을 얹고 상대 당을 궁지에 몰아넣는 수단으로 입법을 활용하게 된다. 국회에서 국민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몸싸움이나 집단 시위를 할 바에야, 차라리 그 시간에 상대 당 의원들을 만나고 본인이 발의한 법안에 관련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옳다.

필자가 미국 사무소에서 근무할 때, 로비회사의 고위층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때 그 인사는 로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국회의원의 입법 능력을 보완하는 역할이 로비의 핵심이라고 언급했다. 국회의원들이 혼자 있거나 자신의 당 사람들과만 대화를 나눈다면 그 의원의 입법 능력은 그 수준에서 결정되지만, 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한다면 입법 능력은 그만큼 더 높아지고 실제로 법안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행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 대표로 당선된 직후,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회담을 제안해 다음주 여야간 대표회담을 갖는다고 한다. 이 회담으로 입법 만능주의에 빠진 국회가 정치를 복원하여 시급한 민생 현안들과 우리 경제발전에 필요한 정책 입법들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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