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성장률만큼 코스피 성장했으면 지수 6000 넘었을 것"
대주주들 스스로 기업 가치 제고 나설 유인책 펼쳐야
“GDP 성장률만큼 코스피가 성장했으면 지수 6000 넘었을 것이다.” 지난 주 목요일 금융감독원이 국민연금공단, 한국거래소와 공동으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나온 뼈아픈 지적이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인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곱씹어보니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는 1989년에 1000 포인트를 처음 돌파했다. 1980년 100으로 시작했으니 9년 만에 10배나 상승한 것이다. 2000 포인트 돌파는 무려 18년이나 지난 2007년이었다. 중간에 IMF 외환위기, 닷컴버블 등의 위기가 있었다고는 하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비교해 볼 땐 코스피 지수 상승률이 크게 둔화됐다. 그리고 약 14년이 흐른 2021년에 코스피 3000 포인트 시대를 열었다. 그나마 지금은 다시 하락해 2600 포인트 근처에서 전전하고 있으니, 큰 의미가 없어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집값이나 물가 상승률에 비하면 정말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해외와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증시는 성장률이 낮은 편이다. 미국, 일본 증시 모두 올해 전고점을 돌파했는데, 우린 아직 전고점 근처도 못갔다. 미국 증시가 오를 때 우린 찔끔 오르고, 미국 증시가 내릴 땐 우린 크게 내리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으니,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개미들 입장에선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할 수 없다.
한국경제는 선진국이 됐다고 극찬을 받는데, 한국 증시는 왜 이렇게 저평가를 받고 있을까. 우리나라 기업들 지배구조가 후진적이어서 그렇다는 의견이 많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그런 논리라면 1980년대 주가 급등은 설명하기 어렵다. 반대로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크게 개선됐으나 증시는 크게 상승하지 않았다는 점도 설명이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한계에 있다고 본다. 한때 고도성장기를 구가하며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우리 경제는 어느덧 2%대 성장이 당연한 시대에 살게 됐다. 그나마도 잠재성장률은 점점 하락해 2060년대가 되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증시 펀더멘털도 좋지 않다.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증시에 대한 투자를 계속 줄이고 있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대규모로 한국 증시에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반면 미국은 401k와 같은 연금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기금 규모를 키우고, 연기금은 다시 자국 증시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로 되어 있다.
정치권의 의지도 부족하다. 과거에는 주가가 하락하면 종합 증시 부양책을 발표하곤 했는데, 요새는 밸류업이라는 미명만 있을 뿐 구체적인 대책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나마 국회에선 금투세 같은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
사실 주가는 개인으로 치면 건강검진 수치와 같아서 단기간에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오히려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개입했다가 더큰 부작용으로 돌아올 우려도 있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증권 시장은 대표적인 경기 선행지표다. 주가는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미래의 성장 기대감에 더 큰 밸류에이션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 자체의 성장 기대감이 크지 않으니 주가가 상승탄력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경제 체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의 밸류업을 구호로만 외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우리 기업들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 투자하겠다는 소식만 많아지는 환경에서 우리 증시가 상승할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
또한 기업의 대주주들이 스스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주가가 높으면 대주주들의 페널티가 더 많으니, 대주주들이 주가 상승에 관심이 적은 것이다. 정치권도 금투세와 같은 주가 역행 정책보단 부양시킬 방안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 바란다. 이것 또한 추석 민심 중 하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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