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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임종석이 김일성-김정일-김대중 ‘3김’을 내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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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임종석이 김일성-김정일-김대중 ‘3김’을 내친 이유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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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김정은의 2국가론과 선대 유훈 폐기에 당황한 운동권
임종석, 개헌이든 뭐든 다 할테니 버리지 말라는 애원
왼쪽부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고(故) 김일성 북한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네이버 캡처, 연합뉴스
왼쪽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김일성 북한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네이버 캡처, 연합뉴스

임종석 전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의 “통일하지 맙시다”라는 시비조의 도발은 김일성, 김정일, 김대중 등 3김을 한반도 분단역사에서 한꺼번에 지우는 대반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 공존, 평화 교류, 평화 통일의 3대 행동강령을 통한 남북연합론은 ‘우리민족 제일주의’를 앞세운 김일성 수령의 연방제론과 맞물리면서 민주당이 손대서는 안될 지고지순 신성불가침의 도그마였다. 임종석의 발언은 그것을 팽개칠 수 있다는 의미로 올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2국가로 규정하고 선대의 통일정책을 버리면서 “동족이라는 현실 모순적 기성개념을 지우자”고 대남정책 방향을 새롭게 설정한데 대한 고위직 출신 운동권 인사의 첫 번째 공식 반응이다.

지난 1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쳐왔던 대한민국 내 좌파들은 김정은으로부터 핵폭탄급 뒷통수를 맞았다. ‘민족, 평화, 통일’은 79년간의 남북분단사에서 북한 통일전선전술의 핵심이자 김일성-김정일 유훈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이 선대 수령의 무오류성을 걷어차 버리고 합작 및 무력에 기초한 통일노선 가운데 합작이라는 한 축을 전격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더구나 북 정권은 남한을 비난할 때 보수정권만을 콕 집어 “흡수통일을 획책하는 미제 앞잡이 전쟁광”이라 공격해왔는데 이번 시정연설에서는 보수-진보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이라고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김정은의 2국가론은 1972년 7·4 남북공동 선언의 자주·평화·민족대단결 등 3대 정신을 훼손한 것으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고 규정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평화·통일·화해 원칙을 전면 부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김일성의 통일론을 학습한 남한 내 운동권 특히 NL 주사파에 있어 김정은의 발언은 NL계 운동권이 존립할 근거가 사라지는 즉 존재 부정 그 자체다. NL계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 핵심 모순을 계급 문제로 보고 노동운동과 연계해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유토피아를 건설할 것을 주장하는 PD계열과 달리 핵심 문제를 남북분단과 대미 종속으로 보고, 이를 민족 모순으로 판단하여 반미운동을 통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과 협력하여 통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해왔다. NL계가 통일을 버리면 바람빠진 풍선이 된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NL계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존엄의 '통일 지우기' 교시 이후에 뒤따라야할 지도 및 학습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 수령의 교시 이후에는 대내적으로는 노동신문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조선중앙통신이나 ‘우리 민족끼리’ 같은 매체를 통해 해설을 내보내 교시의 배경에 대한 전략적 목적과 전술적 투쟁 방향을 인민에게 체화시키는 과정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의 작년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발언과 올초 시정연설만 반복해서 보도할 뿐 ‘심화학습’을 위한 지도 자료를 내놓치 않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좌파들의 침묵은 바로 그 지점에서 지령이 내려오지 않는, ‘버림받은’ 답답함의 표출이다.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에 따르면 그동안 북한의 지침에 따라 통일운동을 해온 조총련 측이 당황한 나머지 “이제 통일을 안 하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다급히 통일전선부에 문의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당장 좌파들 내에 분열이 시작됐다. 임종석의 발언은 북한 정권의 지령이나 수령의 교시에 대한 학습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종북 세력이 얼마나 혼돈스러워 하는가를 여실히 드러낸 계기가 됐다. 이 발언을 두고 이종석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은 “통일은 후대에 넘기자”라고 했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그 얘기가 옳다고 생각한다”고 하는 등 임종석과 같은 입장임을 표명한 반면 김대중의 적자(嫡子)를 자처하는 박지원 전 김대중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성급했다”고 발을 뺐다. 눈길을 끈 것은 이석기 통일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의 반응이다. 김대중 노선과는 별개로 김일성 일가를 직접 추종하는 세력이 임종석 발언에 대해 “경솔하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한 것이다. 진보당이 임종석에 동조하지 않는 이유는 임종석의 발언이 북한 김정은 정권과의 교감을 통해 나오지 않은, 최소한의 정통성을 부여받지 못한 견해라는 의미다.

김정은의 2국가론은 북한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데올로기를 전환하려면 당연히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론적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곧 체제의 불안정함을 뜻하는 신호다. 아무리 북한 사회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사회 동의구조가 존재하며 북한 또한 강력한 사회통제체제 속에서도 나름 체계화된 동의구조를 운용해 왔다. 통치이데올로기와 그 하위 담론들은 이론화 과정을 거쳐 대중에 전달됐다. 김정은의 적대적 2국가론과 그에 따른 선대 유훈의 부정은 예전 같으면 북한의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체계화되고 선전되며, 선동의 구호로 진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한 이슈다. 이번에 이 과정이 실종됐다는 것은 북한 내 엘리트 집단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적대적 2국가론으로 인해 대한민국 내 좌파들의 북한 핵무기에 대한 변명의 근거도 흔들리게 됐다. 좌파들은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 제국주의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자위권의 일환이며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면서 그 근거로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해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의 2국가론이) 자주적 통일 상대인 같은 민족에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자기모순을 제거하고 핵·미사일 고도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 대 국가 구도를 설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좌파들이 적대적 2국가론을 인정하고 김정은의 교시를 받아들이면 대한민국을 향한 핵·미사일 고도화를 옹호하는 것이 되고 결국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반국가세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임종석 202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석 202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서 나온 것이 임종석의 선제적 개헌 제안이다. 스스로 반국가세력이 되는 것을 막고 김정은에게 남한 내 좌파들이 아직 쓰임새가 있다는 것을 김정은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 및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 대한민국의 헌법이야말로 흡수통일이 국가적 정책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하자 임종석은 헌법에 있는 해당 조항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임종석의 진의는 남한 내 운동권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김대중의 통일 정신 같은 '현실 모순적' 주장은 얼마든지 내팽개칠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 유훈 폐기에 대한 비난도 김정은 최고지도자와 함께 짊어질 수 있다. 김정은의 교시에 걸림돌이 되는 대한민국 헌법 조항은 어떤 부분이든 바꿀 수 있다. 유명무실화됐지만 그래도 눈엣 가시라면 국가보안법도 폐지하겠다.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다 할테니 러시아만 보지 말고 남한 내 ‘김정은 바라기’에도 눈길을 돌려달라. 어떻게 하라는건지 정확한 지침을 내려달라. 그렇게 임종석은 애원하고 있다.

동독은 수십년간 2국가론을 고집하다 정권과 베를린 장벽이 한번에 무너졌다. MZ세대가 남북 각각 따로 살자고 주장해도 1국가론을 고수해온 임종석이 김정은 말한마디로 하루 아침에 2국가가 맞다고 '변검'(變臉)을 시전했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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