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중대한 틀 제멋대로 바꾸어도 방법이 없다니
민주주의를 넘어 대한민국의 존립 기반 자체를 흔들어

지금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의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갖고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야당의 반발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여론의 눈치도 살피지 않는다. 참여연대나 민변 등 친정권 성향의 단체들조차 우려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런 소리에도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랄 수 있는 ‘다수의 횡포’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의 입법폭주는 이번만이 아니다. 부동산 3법도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 처리하지 않았던가.
부동산 3법이 보여주듯 민주당의 ‘다수의 횡포’가 빚은 결과는 처참하다.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한 ‘검수완박’의 결과도 훤히 내다보인다. 중대 범죄, 특히 권력과 관련된 범죄 수사 자체가 실종되거나 수사가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 것임을 예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검사가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까지 다 맡는 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긴 하다. 검사의 입장에서 보면 수사부터 맡는 게 기소해서 유죄판결을 이끌어 내는 데 유리하다.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피의자 입장에서 보면 검사가 유죄판결에 집착하여 애꿎은 사람을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충분한 논의를 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문제는 ‘검수완박’의 목적이 불순하다는 데 있다. 민주당 스스로 밝힌 바 있듯 그들이 ‘검수완박’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이유가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경기지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건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빼앗으면 두 사람이 지켜질 수 있는 가다.
민주당은 아마도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지 않으면 저렇듯 허겁지겁 서두를 까닭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일이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만 진행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기관이 수사권을 넘겨받든(당장은 경찰이 물려받겠지만)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범죄혐의를 수사하고 진상을 밝혀낼 것이다.
암튼 ‘검수완박’ 사태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화두로 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과연 민주주의는 이상적인 제도인가? 우매한 대중의 정치적 판단과 선택이 다수의 횡포를 가능케 했고, 그 다수의 횡포가 나라의 중대한 틀을 제멋대로 바꾸어 놓아도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다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플라톤의 철인(哲人) 정치가 혹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고매한 인품과 지식을 갖춘 소수의 현자가 있어 그들에게 정치를 맡기면 민주주의의 맹점을 없애며 인민의 자유와 삶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게 믿었던 듯하다.
하지만 이 경우 ‘누가 고매한 현자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또 처음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자라 여겼는데 후에 사람이 변할 경우는 어찌해야 하며, 그 판단은 누가 내려야 하는가 하는 복잡한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그건 근본적으로 우매한 대중에 대한 불신이라 할 수 있다)에 따라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봤을 뿐 사실 실현 가능성도 타당성도 없는 구상이다.
인간이 고안해내고 진화시켜온 제도 중 민주주의가 그나마도 가장 덜 나쁜 제도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일정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문재인 정권에서 목격해온, 그리고 지금 목격하고 있는 ‘다수의 횡포’가 그것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주권재민’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과연 인간이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을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주권재민’은 다수의 뜻에 따른다는 것인데, 이는 실상 ‘다수의 소수에 대한 지배’라 할 수 있다. 이때 다수가 스스로 자제하고 상대에게 포용적인 지혜를 발휘한다면 민주주의는 그런대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은 그 반대 양상으로 나타난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토크빌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상호자제와 제도적 포용과 같은 보이지 않는 규범이 무너지며 위기를 맞고 있다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들의 경고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국가(행정부든 입법부든 사법부든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국가를 말한다)의 권력을 제한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특히 입법부의 입법 제한은 절실한 과제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라 할 때 자유는 목적이고 민주주의는 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자유라는 목적의 실현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는 구체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박탈하는 문제도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지금 논란은 정치적 이해에 따른 것일 뿐 근본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넘어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