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형사재판 중‘경영판단원칙’ 否認이 認定의 3배
법원 경영판단의 원칙에 소극적 ... 형사재판은 더 엄격
"경영판단원칙 명문화로 배임죄 부담 완화 및 예측가능한 사법환경 조성해야"
[매일산업뉴스]우리 기업은 형법상 배임죄 규정 때문에 중요 결정시 보수적 판단을 내리게 된다. 사후 문제가 될 경우 ‘경영판단의 원칙’(이하 경영판단원칙)이 이사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으나, 법원은 이 원칙 적용에 매우 엄격하고 판결의 일관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9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에 의뢰해, 지난 10년(2011~2021년) 간 경영판단원칙을 다룬 대법원 판결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경영판단의 원칙(BJR: Business Judgement Rule)은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고(선관의무) 이사의 재량범위 내에서 행위를 했다면 비록 회사에 손해가 발생해도 개인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1980년대 델라웨어주 대법원이 판례를 수립한 이래 법원에서 이사의 경영책임을 판단하는 일관된 기준이 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경영판단원칙에 대한 명문규정이 없고 판례에서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영판단의 원칙(이하 경영판단원칙)’은 민사에서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따지는 기준이 되고, 형사에서는 이사의 횡령·배임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전경련 분석결과, 경영판단원칙을 다룬 대법원 판례는 지난 10년(2011~2021년) 간 총 89건(민사 33건, 형사 56건)이었는데, 경영판단원 칙을 인정한 재판은 34건(38.2%)에 그쳤고 부인(否認)은 55건(61.8%)에 달했다.
형사재판 56건의 경우 경영판단원칙을 부인하는 비중은 더 높았다. 경영판단원칙 부인으로 최종 유죄판결이 난 재판은 42건(75%)으로 인정(무죄) 14건(25%)보다 3배나 많았다.
특히 계열사 지원에 따른 이사의 횡령·배임 여부를 다룬 7건의 재판 중 단 1건만 경영판단원칙을 인정하여 무죄로 판결했다. 기업 경영상의 문제가 형사소송으로 비화될 경우 대법원이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하는데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 확인된다.
민사재판의 경우 경영판단원칙 인정(20건, 60.6%)이 부인(13건, 39.4%)보다 높았는데, 대법원은 이사 재량범위 밖이거나(9건) 명백한 법령위반(4건)이 아니면 경영판단원칙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경영판단원칙 적용에 엄격할 뿐만 아니라, 판결에서도 일관성을 찾기 힘들어 경영 일선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룹내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급 보증이 배임죄로 문제가 될 경우, 법원은 경영판단원칙을 인용해 무죄로 판결하기도 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경영판단원칙을 부인하기도 했다. 결국 기업들은 배임죄 처벌 위험과 법원의 비일관된 경영판단원칙 적용으로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다.
한국 기업가들은 민사상의 손해배상청구소송 뿐만 아니라 배임죄에 의한 형사처벌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대법원 판결 통계가 보여주듯, 법원으로부터 경영판단원칙을 인정받기도 어렵고 입증책임까지 경영자가 진다. 여러모로 기업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반면 미국법원은 배임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경영판단 추정 원칙’을 기반으로 ▲필요한 절차(예, 주총이나 이사회 적법 결의)를 밟았는지, ▲이사 재량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판단인지 등 우리보다 간략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는 법원이 경영자의 전문적 판단에 대한 사법적 심사를 자제하는 것으로, 한국법원이 개별사안의 내용을 세세하게 심사하고 미래 위험성까지 판단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연구를 맡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법원이 경영일선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데, 전문경영인이 내린 고도의 전문적 판단 내용까지 법원이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면서 “경영판단원칙에 대한 적용 기준을 법에 명시하고 법원은 미국처럼 절차적인 하자 여부에 중점을 두어 사법적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