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패권주의, 중국의 중화주의, 미국의 우선주의
거기다 대중의 광기에 휘둘리는 우리는 아직도 삼류국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싸움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며 ‘역사의 종언’(저서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1992년)을 선언했다. 그는 공산주의가 이길 수 없음을 확신했고, 그건 인간 세상의 이치상 당연한 것이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이상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공상일 뿐이었다. 후쿠야마의 선언은 그런 점에서 탁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공산주의의 또 다른 얼굴인 전체주의를 직시하지 못했다. ‘역사의 종언’은 그의 기대와 소망일 뿐이었다. 공산주의 소련보다 결코 덜 악하지 않은 히틀러의 전체주의 악령이 21세기에도 인간의 주위를 서성이고 있을 것임을 그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순진한 기대와 소망만 가졌을 뿐 인간에 대한 성찰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권력을 위해 헛된 신화로 대중을 선동하여 다수의 횡포로 소수를 억압하는 무리가 인간이다. 윌리암 골딩의 1983년 노벨문학상 작인 ‘파리대왕’을 보라. 광기 어린 군상. 그 어리석은 인간 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게 '파리대왕'이다.

역사는 끝났는가. 아니다. 헤겔도 그렇거니와 후쿠야마도 역사가 끝났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다시 시작되는 역사는 인간 이성의 새로운 인식에 기반한 관점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냉전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많은 나라가 그 길로 가는 듯 보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지난 역사의 반복이라고 보아 틀리지 않을 듯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패권주의와 중화주의, 심지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인류의 미래는 극히 불투명하다. 우리가 알던 문명, 곧 자유와 평등,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가 확장되고, 인간은 그 문명을 발전시켜 보다 밝은 내일을 향하리라는 기대는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구(舊)소련의 부활로서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나 중국 공산당이 중화주의를 기치로 일당 독재체제를 강화해 가고 있는 것은 내셔널리즘(국가주의든 민족주의든)의 전형이다. 그런데 그게 이들 나라들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이고, 특히 한국은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가치의 동맹을 외면하며 일본을 적대시하는 가운데 중국에 기울어져 왔던 게 저간의 사정이다. 문재인 정권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대일관계를 악화시켜왔다.
그간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질서를 앞장서서 구축해온 세계의 리더 국가다. 그런 미국이 지금 하는 일을 보면 미국이 구축해온 인류 공영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한다면서 자유국가의 보편적인 가치와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게 미국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이 격에 맞지 않게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있고, 오히려 미국은 자유무역을 파탄내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모양새다. 이런 난센스가 있을까.
트럼프를 정치적 경쟁자가 아닌 적대관계에서 바라보고 있는 바이든은 또 다른 트럼프일 뿐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자유의 가치를 허무는 것은 바이든도 트럼프 못지않다. 바이든이 좌파라는 점에서 보면 그가 트럼프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자유무역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행보는 그가 자유세계의 리더 국가 미국의 지도자인지 헷갈릴 정도다.
트럼프나 바이든과 같은 인물들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의 지적 능력이 크게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바이든이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에 서명한 것이 선거를 의식해서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바이든의 결정은 곧 미국인들의 의사를 대변한 것이라고 보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자국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주도록 한 IRA는 한국의 현대자동차 전기차가 불이익을 보아서만이 아니라 자유무역, 나아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크게 손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명의 후퇴 내지는 퇴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에 무지한 사람들이 흔히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는 것이다. 무역, 나아가 모든 거래는 상호 이익이 되기 때문에 성사되는 것이다. 한쪽이 손해라면 그런 거래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인류의 번영은 교환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교환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분업도 가능하지 않았고, 폭발적인 생산력의 증대는 당연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미국의 대통령을 필두로 한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반(反)시장경제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양상은 자유의 가치가 퇴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러시아나 중국 공산당 등 전체주의 국가들(북한 김정은 정권은 언급 자체가 불필요하니 논외로 한다)에 더해 세계를 자유로 이끌어야 할, 아니 그런 기대를 받는 미국이 오히려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으니 도대체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내셔널리즘으로 세계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場)으로 전락한다면 그야말로 문명의 종언이라 하여 과하지 않다. 그 귀결은 파국이다. 그래서 문명의 종언이 내다보이고 있는 현실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럴 때 지성의 힘이 요구되는데 오늘의 세계에서 지성은 보이지 않는다.
내셔널리즘에 관한 한 한국은 특히 할 말이 없는 나라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횡행하는 가운데 ‘백년친일척결’이라는 프로파간다가 먹혀들어 대중이 광기에 휘둘리니 우리는 아직도 정신적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삼류국가다. 우리가 자유의 가치를 바로 세울 때 국제사회를 이끄는 중추 국가로 올라설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중요한 가치의 시대다. 그런데 우리는 국수주의나 편협한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다. 대한민국이 정말 부끄러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세계를 인도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