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신뢰를 주지 못하는 치명적 한계
민주당 의원들중 몇명이나 이재명 믿을까

깜짝 놀랐다. 반전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 주범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에 대해 “천천히 말려 죽일 것”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저런 말을 했을까 싶다.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니, 배신감과 분노가 얼마나 컸기에 이러는지 가늠조차 어렵다.
이십 년 가까운 그 오랜 세월 이해와 고락을 함께해 온 처지인데도 유동규는 이재명을 향해 날 선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유동규가 이재명을 감싸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니 했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 이재명은 더욱 소리 높여 정치 탄압을 주장할 터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유동규가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비유하자면 주군을 배신한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불현듯 장세동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유동규와 너무나 대조적인 사람. 전두환이라는 ‘주군’을 위해 끝까지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스스로 다 뒤집어쓰고 감옥까지 갔다 온 바로 그 사람. 최악의 순간에 이르러서도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장세동. 그는 출감하고 전두환을 찾아가 “휴가 잘 다녀왔다”고 기염(?)을 토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80년대 5공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질문에도 전두환을 지키기 위해 모르쇠로 일관하여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지만, 동시에 의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장세동은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 법”이라며 “차라리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각하가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고 했다. 그것이 비록 왕조시대나 민주주의 이전 시대의 의식이라 해도 ‘끈끈한’ 인간관계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 게 사실이다.
유동규와 장세동을 이야기했지만 그건 사실 이재명과 전두환의 얘기다. 이재명은 유동규로부터 극도의 배신감으로 인한 저주를 받고 있지만 전두환은 장세동의 진심 어린 충성을 받았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이재명은 함께 해 온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전두환은 끝까지 신뢰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 법이라는 말은 사실 오늘의 시대에도 적용되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역량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그 역량과 존재 의미를 입증하려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재명은 치명적인 리더십의 한계를 안고 있다고 보아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 내 이재명을 따르는 의원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욕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들 중 다수는 진실보다는 정치의 논리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정치의 논리란 자신의 정치생명이나 입지에 따라 처신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차기 총선에서 공천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 혹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박수를 받느냐 손가락질을 당하느냐에 따라 처신을 달리 한다는 뜻이다.
지금 이재명이 주장하는 ‘정치 탄압’에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들이 진실로 공감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장동 사건이나 백현동 사건, 또 그밖에 이재명 대표에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숱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이 대표의 주장을 정말 그대로 믿고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유동규가 왜 이재명에게 증오와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이재명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법원이 가릴 것이지만 검찰 수사가 정치 탄압이냐 아니냐는 판단의 문제는 합리적인 사고를 하느냐의 여부다.
유동규가 돌아선 것은 이재명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대장동 ‘사업’의 핵심적 실무를 맡았던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당시 그에 대해 이재명은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했다. 유동규는 같이 여행을 하며 식사를 같이 하고, 골프도 함께 친 ‘하위직 직원’을 냉정하게 외면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일개 소모품으로 취급될 뿐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인당할 것을 예견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재명은 유동규에 대해 측근이 아니라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잘라 버렸다.
이렇듯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동지를 헌신짝 버리듯 하는 이재명을 유동규로서는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유동규는, 장세동이 전두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재명에게 충성을 다하며 의리를 지킬 아무 이유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재명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던 사람 넷이나 스스로 삶을 버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런 비극을 지켜보면서 천연덕스럽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정상적인 일상을 이어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은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유동규의 분노를 샀고, 그건 시작일 뿐이다. 유동규가 “작은 돌 하나 던지는데 저렇게 안달인데, 정말 큰 돌 날아가면 어떻하려고”라고 한 말이 사뭇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