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시위의 추억, 촛불문화제가 국회서 열리다니
이재명은 다급해졌고 민주당은 역풍 공포에서 벗어났다
설마 설마 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그저 방심하거나 요행을 바라지 말고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예방해 놓아야 한다는 선인의 조언인줄 알았다. 설마에는 언제나 “그럴리는 없겠지만”이라는 전제가 들어간다. 이 전제에는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불길한 조짐이 보일 때 경계를 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민주당이 입에 탄핵을 달고 다닐 때 설마하면서 이재명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헤징하고자 하는 전략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성공시켰다고 할지라도 윤 대통령에게서 직무와 관련해 중대하게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다는 그 어떤 사유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마가 진짜 사람을 잡으려한다.
조짐은 '탄핵 연대'부터였다. 민주당이 앞장 서기 부담됐는지 진보당을 떠밀어서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등 12명의 의원으로 지난 11일 ‘윤석열 탄핵준비 의원연대’가 구성됐다. 12명 중 9명이 민주당이고 나머지 당이 1명씩인데도 윤종오 진보당 원내 대표가 주도하는 모양새를 일부러 만들었다. 윤종오는 “모임의 취지는 윤석열 탄핵을 국회에서 추진해나가는 것”이라며 “소수가 아닌 200명의 국회의원들의 힘이 모여야 탄핵이 가능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는 대통령 탄핵을 위해 많은 의원들이 함께하길 바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12명이 총대를 맸고 200명이 목표라는 것이다.
이재명이 22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비례대표 3자리를 진보당에게 내준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석기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의 배경은 경기동부연합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경기동부연합이 장악하고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석기의 직계 후배, 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민주노총 주류였던 PD계열 중앙파, 현장파를 누르고 2023년 11월 연임에 성공했다. 이재명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헤쳐 나가는데 돌격대 역할을 해줄 민주노총과 한몸인 진보당이 ‘연대’를 주도하게 한 것이다.
연대의 결성 이후 탄핵 시위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에서 대통령실로 향한 시위대가 숙대입구역을 지나면서 붉은 연기를 내뿜는 연막탄을 세차례 터뜨렸다. 길거리는 바로 자욱한 연기에 휩싸였으며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이에 맞선 시위대 간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은 이 과정에서 참가자 중 1명을 특정해서 수사에 들어갔다. 최근 수년간 어떤 시위에서도 연막탄이 등장한 적이 없고 경찰을 향한 시위대의 폭력적 몸싸움도 없었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28일자 기사에서 '전국민중행동',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전국비상시국회의' 등이 "윤석열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적인 시국집회"를 28일 열겠다고 예고한 25일자 기자회견 내용을 전하며 "그들은 전국각지에서의 윤석열괴뢰정권퇴진을 위한 대중적인 촛불투쟁계획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 탄핵 집회를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괴뢰국회' 앞에서 '단결하여 윤석열을 탄핵하자!' 주제의 제107차 촛불집회와 시위가 광범히 전개됐다"며 "노동자, 농민, 대학생, 야당의원들을 비롯한 전지역의 수많은 각계층 군중이 윤석열괴뢰를 탄핵시키기 위한 대규모적인 촛불투쟁에 떨쳐나섰다"고 전했다.
탄핵 굿판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것이 ‘촛불문화제’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시위의 밤은 언제나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시청 앞 광장을 뒤덮었다. 그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의 탄핵 굿판이 국회 안에서 벌어졌다.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시민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이 주최한 '탄핵의밤' 행사가 열렸고 참가자들은 국회 안이라는 장소에서 탄핵을 외치게 된 것이 감격스러웠는지 거듭 ‘국회 안에서’라는 공간을 강조하는 구호를 외쳤다. 공식 명칭은 '윤석열 탄핵기금 후원자들과 함께하는 탄핵의밤'으로, 후원한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행사 형식을 취했다. 김미화밴드, 가수 백자, 대금 연주자 한충은, 마술사 최정한, 시국미사 밴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등의 공연이 행사의 대부분을 채웠다. "올해 안에 탄핵합시다!"라는 문구가 내걸렸고, 중간중간 참석자들이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의원회관에 있는 회의실 등 공간은 국회의원만 대여가 가능하다. 이번 행사를 위해 대회의실을 빌린 사람은 강득구 민주당 의원이다. 국민의힘은 즉각 반발하며 강득구를 제명하라고 요구했고 민주당은 개별 의원의 행동이었다며 선을 그었다. 공방이 이어지자 강득구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더 이상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사과를 요청하지 않겠다. 국민과 함께 행동하고 실천하겠다"라며 "저 강득구, 몸을 던져 윤석열 정권의 불법에 맞서 반드시 탄핵을 만들어 내겠다"라고 사과는커녕 이번 공방으로 인한 언론의 관심을 즐기는 듯 했다.
개별행동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연막탄이 난무했던 지난 28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윤석열 거부권 아웃 시민 한마당’ 행사에 참석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김건희 왕국’이 됐다”며 “검사 출신 대통령이 대놓고 ‘김건희 방탄’에 앞장서는 이게 나라인가”라고 했다. 이 행사는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전국민중행동, 자주통일평화연대 등이 오후 3시 숭례문 앞에서 주최한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에 이어 열렸다. 시국대회에는 민주노총도 참여했다.
이제 설마 설마했던 탄핵 시즌3가 개봉됐다. 연막탄은 탄핵 시위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촛불문화제는 진군가로 달궈졌다. 11월 사법부 선고 예정으로 몰린 이재명은 다급해졌고 민주당은 역풍의 두려움을 벗어났고 북한 매체들은 신이 났다. 취재차 대통령실의 관계자와 통화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지난 주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가 올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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