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 감축이 가능하지 않음은 누구나 안다
국가 장기적 에너지 계획 멈춰 세우는 건 다수당 독단이고 횡포

전력산업의 중장기 밑그림이 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표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5월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했지만, 국회 보고 절차에서 가로막혔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고 원전을 줄일 때까지 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한다. 이쯤 되면 민주당이 환경 원리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지, 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 아직도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본은 중장기 전력수요 전망과 전력설비 확충을 위해 2년 주기로 수립하는 15년짜리 장기계획이다. 11차 전기본은 2024년부터 2036년까지 계획을 담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9월 공청회를 개최했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원회(산중위) 보고 절차를 마치면 최종안을 확정할 수 있다. 전기본 확정에는 국회 심의나 의결 절차가 필요 없지만, 보고 일정을 잡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이행할 수 없다. 절대다수 의석으로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민주당이 고집을 굽히지 않는 한 전기본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2038년까지 10.6GW(기가와트)의 신규 전력 설비가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무탄소 전환도 주문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은 줄이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수소·암모니아 등의 발전원을 확충하라는 것이다. 실무안에 따르면, 원전 발전 비중은 2030년 31.8%에서 2038년 35.6%로 늘어난다. 680MW 규모 혁신 소형모듈원자로(i-SMR)를 도입하고, 대형 원전 3기를 새로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신재생 비중도 같은 기간 21.6%에서 32.9%로 증가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국회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까닭을 모르겠다. 그래서 환경 원리주의에 포획된 게 아닌가 의구심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다.

‘원리주의’ 하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떠올릴 것이다. 2021년 미군이 철수할 때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이 목숨을 걸고 탈출했던 것은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후 이 나라는 지옥으로 변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탈레반은 여성의 중학교 진학을 금지하고 취업 역시 제한했다. 여성들은 탈레반이 내놓은 ‘도덕법’에 따라 집 밖에서 신체를 완전히 가려야 하며, 공원이나 체육관 등 상당수 공공장소에 출입이 금지됐다. 공공장소에서 여성은 노래하거나 시를 낭독해서도 안 된다. 탈레반은 최근엔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주택 신축 시 이웃집이 보이는 창문을 내선 안 된다는 칙령까지 발표했으며, 창문이 있는 기존 주택은 창문을 가리도록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전기본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과 탈레반을 연관 지어 말하는 게 생뚱맞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리주의에 갇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본질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탈원전 정책이 어떤 재앙을 불러왔는지 생각해 보라. 세계적인 역량을 갖고 있던 한국의 원전 산업 기반을 무참하게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윤석열 정부 들어 ‘탈 탈원전’ 정책으로 돌아서서 안간힘을 다해 원전 생태계를 복원시켰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K 원전’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바로 환경 원리주의의 산물이었다. 민주당의 ‘원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늘리고’ 집착을 우려하는 까닭이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든 원전 비중을 높이든 중요한 건 탄소 감축이다. 민주당은 국제 기준에 맞춰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외국 주요 기업들이 우리 기업들에 RE100을 요구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 신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 감축이 가능하지 않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부 여당이 ‘무탄소 에너지(Carbon Free Energy·CFE)를 주장하는 것이다. RE100은 풍력과 태양광, 수력 등 재생에너지만 인정하지만, CFE는 이에 더해 원자력과 수소, 탄소 포집 및 저장(CCUS) 등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얼마 전 관련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이 한 포럼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트 조성과 관련하여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구글이나 MS도 CFE를 수용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는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옛날에 비해 엄청 증가했다”며 RE100만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새만금 육상 태양광 발전시설을 찾았다는 그는 “여의도 면적의 1.3배인데 0.3기가와트(GW) 규모”라며 “(태양광은) 중국이나 유럽, 미국처럼 동서로 긴 나라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어 “(용인 클러스터는) 부지가 3300만㎡로 여의도의 11배고, 서울의 은평구 만하다”며 CFE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태양광은 설치 패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킬로와트시(㎾h)당 54g의 탄소를 배출하지만, 원자력은 10g”이라며 “구글이나 MS가 만약 정치만 했다면 이런 (CFE를 수용한다는) 이야기를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원전에 관해 굉장히 경쟁력 있는 국가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전기본의 확정 지연으로 인해 이와 연계된 각종 국가 전력 계획 등에도 연쇄적인 차질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기본은 국가 전체적인 전력 운용 계획을 담고 있어 확정이 늦어지면 전력수급 안정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전력망 구축 지연은 물론 민주당이 강조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저해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무엇보다도 전력망 구축이 지연되는 게 큰 문제다. 전력망을 갖추지 못하면 남서부에 집중된 우리나라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끌어올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 민간기업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가의 계획에 맞추어 사업계획을 짤 수밖에 없는데 전기본이 확정되지 않으니 대규모 프로젝트 증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전기본 국회 보고를 받지 않은 채 국가의 장기적 에너지 계획을 멈춰 세우는 건 다수당의 독단이고 횡포다. 그나마 거기서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만약 그것이 환경 원리주의에 기초한 것이라면 우리 산업에는 재앙일 수밖에 없다. 부디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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