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문재인·윤석열·박병석 ... 모조리 상식 배반
어떻게 하는게 국민 자유 지키는 길인지 제대로 따져봐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놓고 벌어진 지난 한 주간의 사태는 소동과 혼돈 그 자체였다. 원칙과 상식은 실종된 채 꼼수와 야합, 무책임 등 온통 비정상뿐이었다. 여야는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이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박병석 국회의장까지 모조리 상식을 배반했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의 밀어붙이기식 강행부터가 정상이 아니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이 검찰개혁의 완성이라는 주장을 펴는데, 그렇다면 그동안은 뭐하다가 이제 와서 마치 무엇에 쫒기듯 밀어붙이고 있단 말인가. 대선에서 패배하여 정권을 넘겨주게 될 상황이 되니 이러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형사사법체계를 뒤바꾸는 이 중대한 사안을 공론의 장에서 단 한 번의 토론도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당이 얼마나 궁색한 처지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내고 여야 원내대표들이 이에 합의한 것도 정상이 아니다. 우선 중재안 자체부터 문제다. 중재안은 검찰의 6대 범죄 수사 범위 중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부터 삭제하고 ‘부패·경제’는 남기되, 이 둘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등 새 수사기관이 출범하면 폐지하도록 하자는 것인데 인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6개 중 2개는 남기고 4개는 없애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원칙’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야가 ‘공직자·선거’를 검찰 수사에서 제외시킨 박 의장 중재안에 합의했을 뿐 아니라 각기 의원총회의 추인까지 받았다.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웬걸 주말을 거치면서 비난이 빗발쳤다. 선거법 위반이나 직권남용 범죄를 검찰 수사의 대상에서 뺀 것은 여야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야합’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자기들 범죄를 덮고 수사를 뭉갤 수 있게 된다. 현 문재인 정권에 대한 수사만 뭉개지는 게 아니다. 신권력인 윤석열 정권 사람들도 검찰 수사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여야 모두 진지한 성찰과 토론은 없이 이해득실만 따진 결과다. 그러니 야합이라는 비판과 비난은 당연한 귀결이다.
검수완박이든 ‘검수부박(검찰 수사권 부분적 박탈)’이든 중요한 건 원칙이다. 민주당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면 마땅히 2개의 범죄도 검찰 수사의 범주에 남겨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했어야 하고, 국민의 힘 당 또한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박탈하는 것이 문 대통령 및 문 정권 사람들과 이재명 민주당 고문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으려는 음모이며 검찰 수사권 박탈은 권력형 비리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입장(원칙)을 갖고 있었다면 이렇듯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처음의 주장과 논리는 다 어디로 갔는지 꼼수와 파당적 이해득실 계산만 난무했다. ‘정치는 타협’이라는 말도 이번 야합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 문제는 타협의 대상일 수 없다. 어떤 규범을 만들어가야 하는가의 문제에서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식의 타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민주당 입장에서는 1년 6개월 뒤 신설되는 중수청으로 검찰 수사권이 넘어가게 되어 있으니 중재안이 마뜩치 않을 게 없긴 하다. 이는 거꾸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합의해주어서는 안 될 일이었음을 의미한다.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박탈하는 게 문재인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흐지부지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해온 만큼 다수당의 힘에 눌려 무릎을 꿇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원칙에 입각해 소수야당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그러면 민주당으로서도 함부로 폭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것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덜컥 합의안에 서명을 했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에서 추인해주었다. 그런데 여론이 악화하자 태도를 돌변했다. 재논의해야 한다고 말이다. 국민의힘의 이러한 갈지(之)자 행보는 민주당의 독주에 명분을 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도 비정상이긴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박 의장의 중재로 이뤄진 양당 간의 합의가 잘 됐다고 생각한다며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서로 합의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의회민주주의에도 맞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앞으로 계속해 나가야 할 협치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는데 매우 부적절하다. 나아가 문 대통령의 인식에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 사안은 조금씩 양보하면서 합의하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타협하지 않으면 가치, 혹은 철학의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그러는 가운데 국민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논쟁은 없고, 이해 충돌만 있는 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의 민낯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비정상의 예외가 아니다. 당초 윤 당선인은 정치권에서 잘 협의해서 중지를 모아달라고 했었다.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합의하고 각각 의원총회까지 거쳤으면 윤 당선인 말대로 ‘잘 협의해서 중지를 모은 것’ 아닌가. 즉, 윤 당선인 뜻대로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데 거센 비난에 직면하자 윤 당선인은 측근을 통해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비겁하다.
온통 기회주의와 꼼수, 이해득실 뿐이다. 이게 온전한 나라인가? 이제라도 제대로 논쟁을 하자. 형사사법체계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규범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길인지 제대로 따져 보자. 민주당이 이러한 과정 없이 밀어붙이기를 계속한다면 스스로 정당성을 부인하는 꼴이 될 것이고, 국민의힘도 ‘야합’의 추한 꼴을 다시 보이면 한통속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심지어 국회 본회의에서의 필리버스터조차 쇼에 불과하다는 조롱을 받을지 모른다. 민주당은 폭주를 멈추고 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