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통법규 '금지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허용' 사고는 추후 책임
복잡한 세상 효율적으로 이끄는 건 복잡함 아니라 외려 명료한 규칙
“귤껍질은 음식물 쓰레기일까, 일반 쓰레기일까?” 지난주 지인의 집에서 귤을 먹고 귤껍질을 어디다 버려야할지 헷갈려서 물어봤다 벌어진 논쟁이다. 지금까지 어떤 사람은 귤껍질도 껍질이기 때문에 일반 쓰레기 봉투에 버렸고, 어떤 사람은 음식이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버렸단다. 매일 버리는 쓰레기이건만 어쩌면 이렇게 의견이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인터넷에 찾아보니 금방 답을 얻을 수 있긴 했지만, 쓰레기 하나 버리는 데에도 규칙이 참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규칙을 전부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누군가는 부지불식간에 규칙을 위반하고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들 똑똑하고 착해서 대부분 잘 지키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 규칙은 너무 복잡하다. 예를 들어 운전만 보더라도 한국의 교통 규칙은 너무 복잡해서 헷갈릴 때가 많다. 여기에 주차를 해도 되는 것인지, 지금 비보호 우회전해도 되는 것인지(여기에 단속 카메라까지 있으면 심적 갈등은 배가 된다), 지금 이 구간에서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에 진입해도 되는 것인지 등을 고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미국의 규칙은 단순(Simple)하다. 금지하지 않으면 다 허용된다. 주차금지 표지판이 없으면 어디든 주차해도 된다.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는 멈춤(Stop) 표시가 없으면 그냥 가면 된다. 필요하면 중앙선을 넘어 좌측 골목으로 진입해도 법 위반이 아니다. 보행자들도 굳이 건널목에서만 길을 건너야 하는 것이 아니다. 차가 없다면 어디든 길을 건너가도 된다. 물론 이로 인해 사고가 나면 잘못있는 운전자나 보행자는 사후적으로 책임을 져야하지만, 행위 자체만으로 벌금을 내진 않는다. 운전자 또는 보행자는 오직 표지판에서 금지한 행위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인지 나도 미국에서 운전했을 때가 더 마음 편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부동산 세법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나 복잡한지 전문가인 세무사도 의견이 다 다르다. 담당 세무 공무원도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보니 애매하면 일단 부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들 한다. 도대체 국민들을 세법 박사로 만들 심산인지 몰라도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놨다. 이러고서 국민들보고 법을 지키라고 하다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 처사인지 모르겠다.
노동관계법도 마찬가지다. 많은 국민들이 근로자이자 사업자이지만 법이 워낙 복잡하고 지켜야할 것도 많은 탓에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전문가들도 법해석이 다들 제각각이다. 심지어 정부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해석이 다른 경우도 부지기수다. 노동관계법은 위반하면 형사처벌까지 부과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억울한 피해자가 참 많이 나올 수 있겠다 싶다.
규칙이 복잡할수록 사람들은 지키기 어려워진다. 제도의 취지에도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규칙간의 모호성, 충돌가능성도 높아지기에 사회적 낭비도 늘어나고, 당사자간 갈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규제순응비용’이 높을수록 불필요한 국민 고통과 부담만 늘어날 뿐이다.
반면 대형마트를 보라. 우리가 물건을 구입한 후 환불하려고 할 때, 마트가 복잡한 기준과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다. 일정 기간 이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해주니 소비자로서는 여간 편한 일이 아니다. 만일 이를 악용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그에 따른 개별 대응을 하면 그만이다.
이제라도 복잡한 규칙을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규칙은 사회 질서 유지와 더불어 국민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지 국민들을 열심히 공부하게 만드는 학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쉽고 편리하다. 때문에 복잡한 세상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길은 복잡한 규칙이 아니라 오히려 단순명료한 규칙이다. 그래야 모든 국민들이 규칙을 이해하고 지킬 것이 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규칙을 만들기 위한 정책입안자들의 고민과 결단뿐이다.
아 참, 귤껍질은 음식물 쓰레기라고 하니 다들 참조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