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미래, 다시 말해 미래 세대의 운명이 걸린 사안
반시장적 민주당을 개혁에 동참시키는 건 우중 아닌 깨어있는 국민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연금‧노동‧교육의 ‘3대 개혁과제’를 필수라고 강조했다.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비로소 절망 가운데 한 줄기 빛이 보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간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던 ‘자유’가 국정에서 나타나지 않아 “윤석열의 자유는 어디 갔는가”라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는데,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주는 발언이 아닐까 싶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은 우리나라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한 필수이고,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소신있게 밝히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어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해 내겠다”고 한 말에서 ‘이제 비로소 국가지도자다운 면모를 보게 되는가’ 하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점검회의라는 행사의 취지에 무색하게 진척된 사항이나 실행 계획이 없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지만, 그런 비판은 상투적인 것일 뿐, 윤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점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국민 의식 수준이다. 국민이 과연 3대 개혁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하고 동의하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란 얘기다. 정책은 대부분 법률 개정으로 이루어지는데,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동의하게 만들려면 국민이 압박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 국민은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게다가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언론이나 평론가들은 대중이 우중(愚衆)이라는 점을 직설적으로 지적하기를 꺼린다. 인기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비겁하고도 무책임한 일이다.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양비론이나 어중간하게 고담준론을 늘어놓는 것은 대중 인기에 영합하려는 매우 나쁜 습성이다. 우리 사회의 언론이나 평론가들이 이미 그런 고질병에 걸린 지 오래임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할 때다. 내가 1인칭 시점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곰이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는 TV 광고를 다들 본 적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북극곰이 멸종위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수가 많아져서 인간이 사는 곳까지 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진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광고에 속아 아낌없이 기부금을 내왔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운동단체 운동을 초기에 주도했다가 회의감으로 돌아선 사람들이 실토한 얘기다. 비단 이런 것만이 아니다.
1992년 2월 6일 미국 시카고대학 캠퍼스 중심에 위치한 대규모 강당인 만델 홀(Mandel Hall)에서 ABC방송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인 ‘나이트 라인’이 진행됐다. 그런데 생방송이 시작되기 전 비디오 영상이 먼저 나왔고, 토론 분위기는 그 영상에 의해 압도됐다. 그 영상은 익사하기 직전 가까스로 구조된 소녀가 영구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있는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하고 있었다. 가입돼 있던 백만 달러짜리 보험을 통해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금을 이미 다 써버린 소녀의 부모는 다른 의지할 곳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토론자들은 물론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아마도 시청자들까지)도 재해보험 액수를 무제한으로 하는 국가적 차원의 보건계획이 그같은 가정의 경제적 파탄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에 공감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특별히 냉철한 이성의 소유인 리처드 A. 엡스타인 외에는 없었다. 엡스타인은 방청석에 있었던 탓에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 일을 계기로 ‘공공의료의 치명적인 위험’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 책에서 놀랍게도 그는 비정하리만치 냉정하게 말한다.
“패널들은 포괄적 보험적용이 도덕적으로 당연한 선택이라고 믿고 있었다.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그것을 위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뿐이었다. … 공공비용을 들여서 그 소녀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그 어떤 조치도 취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소녀의 부모에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엡스타인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소녀가 회복할 가능성은 없는 상태다. 소녀를 돌보는 데 들어갈 비용은 막대한 것이었다.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미미하고, 그 대신 잃어야 하는 기회는 엄청나다. 그 비용을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구제하거나, 훨씬 더 효용성 있는 데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회복 가능하지 않은 소녀의 생명 유지를 위해, 단지 불쌍하다는 이유로 낭비하는가.
이런 주장을 접하면 대부분 “어떻게 인간의 생명을 놓고 그렇게 비정하게 시장의 논리를 펴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2년인가를 생명유지 장치로 연명했을 때 그 비용은 공공재정으로 한 게 아니니 문제 삼을 게 없다. 하지만 위 소녀의 경우 인간적 연민으로서는 그럴 수 없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는 일이다. 비정한 것 같지만 이게 맞는 말이다.
장황하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까닭은, 과연 우리 국민이 우중의 의식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윤석열 정부 3대 개혁 성패의 관건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다.
윤 정부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두말할 것 없이 민주당이다. 아니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는 반시장적 의식이다. 반시장적이라는 말은 반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민주당을 돌이켜 세우기 위해서는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 우중으로 남아 있어서는 3대 개혁은 가능하지 않으며, 이 나라의 앞날도 없다.
인간은 좀처럼 고정관념이나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 한국인들은 특히 그러한 경향이 심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정치적 성향으로 파당적 세력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사회는 특히 두드러지지 않나 생각한다. 이러한 것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합리적 사고, 이성적 판단을 하려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나라의 미래, 다시 말해 미래 세대의 운명이 걸린 사안이다. 우리 국민이 우중의 의식 상태에서 벗어나길 기대하는 것은 헛된 꿈일까. 철학적으로 논한다면 인간 이성에 대해서 회의적이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이성에 호소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어 보이기에 어쩔 수 없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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