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효시 영국에서도 1967년 의회특권특별위 폐지 권고 이후 축소 추진
폐지 어려우면 기명투표 방식으로 변경해 역사적 책임 소재 명확히 해야

지난 3일 법원은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혐의가 없다거나 증거가 불충분해서가 아니다. 단지 노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작년 12월 28일 국회에서 부결됐기 때문이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탓이다. 국회법 제26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 또는 구금 영장을 받으려 할 때에는 국회의 체포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44조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규정에 근거하고 있다. 말 그대로 국회의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노 의원의 범죄 혐의 증거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오죽하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노 의원이 청탁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된 녹음파일이 있다. 지난 20여 년간 중요 부정부패 수사를 직접 담당해왔지만 부정한 돈을 주고받는 현장이 이렇게 까지 생생하게 녹음돼있는 사건은 본 적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한 장관이 피의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는 참으로 궁색한 이유를 앞세워 체포동의를 거부했다.

국회의원에게 이런 엄청난 특권을, 그것도 헌법으로 규정한 것은 행정권력으로부터의 부당한 억압을 방어함으로써 국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행정부를 견제·감시하기 위함이다. 결코 의원 개인이 잘나거나 예뻐서가 아니다. 국회라는 국가기관의 정상적인 작동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인 것이다.
이 같은 불체포 특권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제왕적 행정 권력의 전횡으로부터 야당을 보호하고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 왔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제도도 변해야 하는 법. 행정 권력이 약해지거나 국회의 권력이 비대해졌다면 불체포 특권의 개혁 필요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권력 지형도는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체감상으로는 입법부 권한이 행정부보다 상위에 있다. 요새 신문기사만 봐도 입법 권력의 횡포, 입법 폭주, 입법 농단 등 국회 권력에 대한 비판들이 연일 수두룩하지 않은가.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각종 정책이 국회의 반대에 무산되거나, 행정부 입장에 반대되는 법률안이 통과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1609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불체포 특권을 도입했던 영국도 1967년 의회특권특별위원회의 폐지 권고 이후 불체포 특권의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주요 선진국도 불체포 특권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 우리나라와 같이 거의 무제한적인 특권을 인정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최근 불체포 특권이 국회 기능 보호보다는 방탄국회용으로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무소불위식 불체포 특권은 더 이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물론 당장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순기능이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개선할 필요는 있다. 예를 들어 의정 활동과 전혀 상관없는 범죄행위가 명확하게 소명되고, 죄질이 일정 형량 이상인 경우에는 불체포 특권을 남용할 수 없도록 하거나,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을 기명투표 방식으로 변경하여 역사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방안 등이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면 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준수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국민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뽑아 준 정치인이라면 자신들만의 특권 보호가 아니라 국민의 권익 향상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국민들이 기대하는 국회의원의 최소한의 모습 아니겠는가. 참고로 작년 1월 민주당 혁신위원회에서 기득권 타파 차원에서 의원이 가진 불체포 특권을 제한하자는 혁신안을 낸 바 있다. 지금도 그 말이 유효하다면, 불체포 특권 개혁을 미룰 이유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