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에 요금 떠넘긴 문재인 정권의 국민 바보 취급
‘근시안적 유권자에게는 근시안적 정책이 제격’ 총선때도?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버드 박스’는 내용도 모르고 포스터에 이끌려 시청하게 된 영화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 끔찍하게 변해버리는 괴현상에 인류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두 아이를 지켜야하는 주인공의 극한의 사투를 그려냈다. 포스터에는 푸른색 천으로 두 눈을 가린 산드라 블럭이 역시 천으로 눈을 가린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섬뜩하게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포스터에 끌린 이유는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멀쩡한 두 눈을 가리고 살아가야하는 주인공들의 상황이 우리가 처한 현실과 닮아 있는 것 같아서였다. 영화에서는 천을 벗고 세상을 보면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는 설정인데 내게는 적반하장의 거짓과 가짜로 가득한 현실을 보지 말아야 그나마 전복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쏟아지는 뉴스에 천으로 두 눈을 가리고 싶어졌다. 어느 집이나 고지서로 날아든 가스비 폭증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그 때 민주당의 논평은 윤석열 정부를 향해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난방비 폭탄의 책임이 있는 윤석열 정부가 고물가에 이어 무대책으로 국민들을 분통 터뜨리게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주장은 ①지난해 가스 요금은 4월 한 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윤석열 정부에서 올렸고 ②10월에는 주택용 가스 요금을 한 번에 15.9%나 올렸으며 ③2021년부터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오른 건 맞지만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소상공인과 서민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감내할 수준이므로 ④인상이 불가피하더라도 최대한 피해야 하고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부의 당연한 의무라는 것이다.
위의 주장은 전기·가스 등의 인상요인은 논하지 않고 공공요금을 올리는 정부만 무조건 나쁜 정부이고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안올려서 서민에 피해를 주지 않았으므로 지금도 인상은 최대한 피하라는 것이다. ‘근시안적 유권자에게는 근시안적 정책이 제격’이라는 말이 있다.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공약을 좋아하는 유권자는 나중에 돌아올 세금 폭탄을 생각하지 않는다. 공공요금을 인상하지 않는다는 정당을 쫓아가는 유권자는 공공요금 폭탄의 고지서를 발부하는 정권만 탓하게 된다. 정치인들이 건네는 사이다만 들이켜게 되면 충치를 비롯하여 골다공증에 당뇨병의 위험을 떠안아야한다.
문재인 정부 탓을 하지 말라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다음 3가지는 인정하느냐고 묻는다. ①돈이 시중에 많이 풀리면 물가는 오른다. ②곳간을 비우면 후손은 굶게 된다. ③가스공사의 누적 손실이 9조원에 달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발병 이후 경쟁적으로 화폐를 마구 찍어댔고 우리나라도 기록적인 추경 퍼레이드를 이어나갔다. 당시 민주당은 OECD를 인용하며 재정적자는 거짓이고 더 많이 돈을 풀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돈이 풀리면 돈 가치가 떨어지고 돈 가치가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이 뒤따르고 돈을 회수하기 위해 금리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면 환율이 오른다. 그러므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주요인은 코로나19를 핑계로 한 선심성 돈 잔치에 있다. 고통 받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온전히 돌아가야 할 지원금을, 표를 위해 절박하게 필요하지 않은 모든 유권자들이 받을 수 있게 돈을 푼 문재인 정부에 있다.
무엇보다 국제가격보다 액화천연가스(LNG)를 싸게 공급하느라 늘어난 한국가스공사 미수금이 2021년 말 1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9조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가스공사는 결국 지난해 10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요금을 38% 넘게 올렸다. 현재 요금보다 50%를 더 올려도 가스공사 적자는 2026년에야 털어낼 수 있다. LNG 의존도가 높은 우리 사회 난방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지금보다 50% 넘는 난방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피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가스공사의 8차례 인상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기 내에 가스요금을 인상하지 않았다. 천연가스 국제가격은 2020년 말부터 1년 새 3배나 급등했는데도 가스 요금을 동결하다 대선 직후 찔끔 올리는 데 그치는 등 5년 내내 가스값을 인위적으로 억눌렀다. 나누어 인상하면 크게 고통 받지 않아도 될 일을 차기 정부에 큰 고통으로 떠넘긴 것이다. 이게 죄가 아니라고?
민주당이 무엇을 하건 지지하는 당신이 받아든 고지서는 이미 2021년부터 온 세상이 걱정하던 바로 그 ‘문재인 정부의 청구서’다. 2년전 언론은 대선 이후로 폭탄을 떠넘긴 문재인 정부를 질타하며 차기정부가 불쌍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설] 내년 대선 후 전기·가스요금 인상, 속 보이는 꼼수 아닌가’ 세계일보, 2021.12.28.
‘[사설] 전기료 인상도, CPTPP 가입도 '대선 이후'…우연일까’ 한국경제, 2021.12.28.
‘[사설] 전기·가스요금 대선 후 인상 속보이는 선거용 꼼수다’ 매일경제, 2021.12.29.
‘[사설] 전기·가스요금 대선 후 인상, 국민을 바보로 아나’ 국민일보, 2021.12.29.
‘[사설] 동결했던 전기·가스료 대선 후 인상, 속 보이지 않나’ 한국일보, 2021.12.29.
영화 ‘버드 박스’의 제목이 암시하듯 주인공은 새장 속의 새들이 주는 경고를 나침반 삼아 살아간다. 적반하장의 시대, 거짓이 진실로 호도되는 시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상기시켜도 핏대 높이는 목소리에 묻히는 시대, 자신들이 떠넘긴 연금 개혁 등 온갖 궂은 과제를 떠안아야 하는 현 정부를 조롱하는 정당의 시대, 그나마 새들의 경고라도 있으니 살아간다고 위안삼는 시대...두 눈을 스스로 묶은 영화 주인공들이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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