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자들에게 만병통치약처럼 퍼져나가
노란봉투법 일사천리 김호중 방지법은 감감 무소식
지난 주 의미있는 판결 하나가 나왔다. 음주운전 사고 직후, ‘술타기 수법’을 대놓고 시전했던 한 운전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선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해당 사건은 작년 6월 일어난 것으로, 피고인이 음주운전을 한 사실을 피해자가 알아차리자, 바로 인근 편의점으로 달려가 소주 2병을 구매하여 들이킨 사안이다.
이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음주측정을 하여 높은 혈중알콜농도가 측정되었으나, 이것이 사고 전의 술 때문인지, 사고 후의 술 때문인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사고 직후 무려 소주 2병이나 급하게 마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주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길래 ‘술타기 수법’을 금지하는 법(일명 ‘김호중 방지법’)이 도입돼서 그런건가 싶었다.
김호중 방지법은 음주운전 후 일단 도주하고, 추후 술까지 들이켰던 김호중씨 음주운전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이다.
그런데 왠 걸. 전혀 아니었다. 2심 재판 당시 새로 발견된 증거 때문에 ‘우연히’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1심 당시에는 소주 2병을 모두 마셨다는 전제하여 음주량을 재산정했으나, 2심에서는 소주 2병을 다 먹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선 마치 ‘술타기 수법’ 더 이상 안 통하는 것처럼 포장했으나, 이런 우연한 발견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무죄로 넘어갈 뻔한 케이스였다.
다른 사건들은 어떨까. 궁금증에 인터넷을 뒤적거렸더니 “'일단 튀자'에 '술타기'까지…전국 곳곳서 '김호중 따라잡기'”(뉴시스, 2024년 7월 19일자)와 같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김호중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술타기 수법이 음주운전자들에게 만병통치약처럼 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충격적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술타기 수법이 통했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법감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고, 어찌보면 우리 형사법 체계의 공백이었다. 그렇다면 하루빨리 이런 불합리를 바로잡는 것이 우리 입법 당국 본연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선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직무유기도 이런 직무유기가 없다.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김호중 사건은 올해 5월 9일에 발생했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관련 법률안은 국회에 상당수 계류되어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술타기 수법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빛의 속도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던 대한민국 국회는 김호중 방지법에 대해선 침묵했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이었던 5월 말에는 정쟁으로 마무리하더니, 22대 국회에서는 1호 법안으로 채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직결된 법안은 여야 모두 관심 뒷전이다. 최근에도 논란 가득한 노란봉투법은 불도저처럼 통과시키는 모습까지 보였건만, 논란없는 김호중 방지법은 감감 무소식이다.
대한민국은 의외로 범죄 피의자에게 유리한 법제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본인 범죄에 대해선 적극적 증거인멸 행위를 해도 처벌되지 않는다. 이는 아마 과거 인권 탄압의 아픈 역사, 그리고 이로 인한 높은 인권의식 때문일지 모른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에까지 빠져나갈 구멍을 방치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된다. 국회의 존재이유는 자신들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함이다. 거대 집권야당이 굳이 권한을 휘둘러야 한다면 바로 이런 법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이재명 대표가 말한 ‘먹사니즘’의 하나일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