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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성향달라 결혼 안하는게 정치 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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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성향달라 결혼 안하는게 정치 탓이라고?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8.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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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극단 치닫는 정치가 갈등 부채질했다고 비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토론하는 방법 익혀야
지난 2022년 10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자유통일당 주최 집회(오른쪽)와 서울시의회 앞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주최 '공공노동자 총력 결의대회'가 각각 열리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22년 10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자유통일당 주최 집회(오른쪽)와 서울시의회 앞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주최 '공공노동자 총력 결의대회'가 각각 열리는 모습. ⓒ연합뉴스

오월동주(吳越同舟)! 지금의 한국 사회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고사성어가 딱 들어맞는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성인 남녀 39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지난 4일 발표한 ‘사회통합실태 진단 및 대응방안’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 정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준다. 설문조사에서 친구·지인이라도 정치성향이 안 맞으면 술자리를 할 뜻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33%였고,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응답은 71%에 이르렀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8.2%)이 정치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이쯤 되면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와 관련, 대부분 언론은 정치를 탓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부채질해왔으며, 급기야 나라를 둘로 조개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극단의 분열 양상이 정치 탓이라고 하여 이상할 게 없긴 하다. 소수 야당이 퇴장한 가운데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발동하여 국회로 되돌려 보내면 재의 후 폐기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작금의 국회 상황은 정치가 국민을 분열케 한다는 진단을 가능케 한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하지만 국회의 도돌이표 파행이 지금의 정치 지형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하면 정치권만 나무라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을 누가 만들었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곧잘 국민은 무조건 옳으므로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지금의 정치 지형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 국민이라는 점에서 극단의 정치 대립과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의 책임도 국민에 묻는 게 합리적이다. 모든 책임을 정치에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하여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

흔히 민도는 높은데 정치가 그걸 따라가지 못한다며 우리 정치를 개탄하곤 하는데 잘못된 얘기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인식 능력 및 지적 수준에 비례한다. 국민의 지적 능력이 뛰어난데도 정치가 바닥을 길 이유는 없다. 높은 수준의 집단지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고도의 사회 갈등은 그 자체로 정치 부재를 의미한다. 그런데 정치의 부재는 정치인의 자질이나 도덕성 등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를 소비하는 대중에 있다. 소비자의 불합리한 선택이 정치 부재의 정치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지금의 정치 지형을 만들어냄으로써 정치 부재를 초래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키고는 야당이 압도적 다수로 국회를 지배하게 만듦으로써 정부를 절름발이도 아닌 전신 불구로 만든 결과가 지금의 기괴한 정국이다. 이럴 바에는 뭐하러 정권 교체를 하고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는가. 이 책임을 져야 할 건 국민이다.

위 보고서에서 설문조사 응답자의 셋 중 둘(65.1%)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불공정의 가장 큰 원인으로 기득권의 부정부패(38.8%)를 꼽았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한국 사회는 점점 투명성을 높여왔다. 특히 공공부문에서의 투명성은 세계 어느 선진국에 못지않다. 그런데도 실체가 불분명한 기득권 탓을 한다. 정치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때 자기 책임은 묻지 않는다. 그저 사회 탓이고 기득권 탓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전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기득권 탓이 전근대로부터의 관성에서 빚어지는 하나의 환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바탕에는 이러한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언론이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정치권이 나서 지금의 대립과 갈등을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러한 주문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정치권이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치소비자가 바뀌지 않으면 정치공급자인 정치인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요한 건 정치소비자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위 보고서는 “대화와 소통이 단절되면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과 대립, 긴장과 반목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생각과 입장이 다른 사람과 조우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을 온·오프라인에서 조성해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역시 당연한 얘기지만 왠지 공허하다. 지금까지 공론장이 없어서 갈등이 심화해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대화를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간 정치·이념이 다른 사람들 간 수많은 토론과 사적 공간에서의 대화를 보아 왔지만 그건 대화라고 할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바람에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의 토론에서조차 ‘다른 의미의 같은 말’을 수없이 보고 들었다.

대화나 토론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토론의 방법부터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안을 놓고 토론하든 개념부터 분명히 한 뒤 의견을 개진하거나 반박하고, 서로 합의한 지점에서 다시 주장과 반박을 이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면 토론은 의미가 없다. 그간 보아온 토론이나 대화는 개념에 대한 합의 없이 논리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것뿐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견강부회로 일관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갈등이 해소되기보다는 오히려 골이 깊어지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토론의 방법은 어떻게 익힐 수 있을까. 그건 생각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의 차원을 높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훈련을 시켜야 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개념부터 정의하고 주장과 반박을 통해 토론의 단계를 높여가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대화하고 토론하는지를 익히고 지적 능력을 향상해 가도록 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을 듯하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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