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남긴 유적으로 먹고 사는 나라들은 과거만 있고 미래 없어
외국은 보조금에 법인세 인하로 투자 유도, 우리는 강건너 불구경

연초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경제나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이었다. 학생들에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이집트와 앙코르와트, 그리고 뉴욕 타임스퀘어와 파리 상제리제 사진을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가고 싶은 여행지를 물었다. 압도적인 다수가 뉴욕과 파리를 선택했다. 과거의 역사도 좋지만 현재가 더 중요하고, 다양한 흥미거리와 편안하고 쾌적한 여행을 원했다.
이어서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아이 업은 어린 엄마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 엄마가 목각 기념품을 팔기 위해서 1km가 넘는 길을 아이를 업은 채 따라와서, 어쩔 수 없이 목각 기념품을 팔아줄 수 밖에 없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왜 엄마는 그렇게 했어야 할까? 뉴욕과 파리, 이집트와 앙코르와트에 이르기까지, 이들 지역에서 현재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은 무엇일까?
나는 학생들에게 이들 에피소드의 핵심은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뉴욕과 파리에는 기업이 있고, 이집트와 앙코르와트에는 기업이 없다. 기업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어떤 곳은 크고 화려하면서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어떤 도시는 밤에는 일찍 불이 꺼지고 거리는 한산하며, 사람들은 꿈이 없이 외부 관광객의 자애로움에 기대어 살아간다. 과거 문명을 일으켜, 한 때는 부강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냥 유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들과 같은 운명을 따라간 도시들이 많다. 사마르칸트, 바그다드, 이스탄불 등 실크로드로 이름을 날렸던 도시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이들 도시들은 명성이 크게 퇴색된 채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번성하기를 원하지만 방법을 제대로 아는 것 같지는 않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기업만 있으면 뉴욕과 파리처럼 될 수 있다. 만약 삼성이 이집트 기업이라면 지금 이집트의 1인당 국민소득은 배 이상 증가했을 것이다. 지금의 삼성이 이집트에 있으려면 연관 산업과 대학을 비롯한 사회 모든 부문이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이집트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
왜 안될까? 우선 생각해보면, 이들 나라들은 정치 혹은 종교가 너무 강한 힘을 갖고 있어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기업가를 배출하지 못한다. 기업은 자유로와야 한다. 어떤 사고가 지배적이면서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을 때, 기업은 숨을 쉴 수 없다. 유럽의 산업혁명도 중세 종교혁명 이후에서야 가능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기업이 자라나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이다. 기업이 하나 있으면, 기업에 빨대를 꽂은 채로 단물만 빼어먹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기업에 음성적으로 손을 벌리는 사람, 이익이 나는 것에는 관심없이 기업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창업한 사람은 직원 월급주기도 버거운데, 고용 창출을 넘어 사회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획일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사회일수록 부패가 심하다. 세계 빈곤퇴치를 목표로 설립한 월드 뱅크(World Bank)가 수많은 원조 및 개발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부정부패 때문이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많은 교량과 항만, 학교와 병원 등에 지원되는 자금이 권력자와 그들의 친인척과 부패한 관료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렇게 권력의 주머니로 들어간 돈은 기업의 투자와 일반 국민의 소비와는 연결되지 못하고 특권계층의 사금고로 들어가면서 기업에 필요한 투자자금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금고에 잠자고 있는 돈은 종이일뿐 자본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나의 눈에는 그 도시의 사람들이 기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정말 제대로 알고 있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과거 캄보디아, 이집트보다 못 살았던 한국이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의 주요 경제강국으로 도약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방법도 다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느 나라도 한국을 복제하는데 성공한 나라는 없다.
그런데 이런 기적을 일군 한국인은 정작 기업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까? 과거 20년전까지는 ‘그렇다’가 정답이었다면 지금은 ‘모르겠다’이다. 지금 한국은 기업가를 1년 내내 법정에 불러 세우고, 투자는 기업이 하는데 투자할 돈은 상속세와 법인세, 각종 부담금과 준조세로 정부가 걷어 간다. 그 돈으로 기업보다 더 사회에 기여할 방법이 있다고 믿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다. 사회 지도자가 유능하기까지 바라지는 않아도 부정하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비리 의혹에 측근들끼리 똘똘 뭉쳐 특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사회는 경직되어 기업이 기업활동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외치는 데도, 기업에 대한 특혜라며 거리를 둔다. 공무원이 가장 경직적이다. 미국이 보조금을 주고 법인세를 깍아주면서까지 미국내 투자를 유도하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권과 공무원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혹시 못 살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역사는 순환한다지만, 제발 빈곤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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