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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의 글로벌 스탠더드]전례없는 미국 통상 압박에 전례없는 정치갈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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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의 글로벌 스탠더드]전례없는 미국 통상 압박에 전례없는 정치갈등만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1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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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박철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신보호주의 시대에 우리 기업만 기울어진 운동장
기업이 어찌 되든 간에 정쟁만 하겠다면 망하는건 경제
지난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Level the playing field."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라. 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통상회의가 열릴 때마다 꼭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다. 마치 고장이 난 녹음기처럼 협상 때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이 말을 꺼내 든다.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비즈니스 하거나 한국 기업과 경쟁할 때 미국 기업이 차별받고 있어서 경쟁 조건이 불리하므로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 정부가 글로벌 거대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국내 기업에 대해 차별적 보호조치를 한 적은 있다. 고율의 관세나 인위적인 수입 규제가 사라진 뒤에도, 제품 규격이나 기술 표준을 조금씩 달리해, 한국 시장에 맞도록 제품을 새로 개발하지 않고서는 외국 기업이 국내에 진출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한국의 시장 규모가 새로 제품을 개발할 만큼 충분히 크지 않은 때에는 그러한 조치만으로도 외국 기업의 한국 진출 의욕을 꺾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미국 무역대표부는 미국 기업이 기존 제품으로도 한국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비관세장벽을 없애 달라고 주장했다.

박철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박철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이때까지의 미국은 세계 경제를 하나로 묶어서 지구촌 어디에서든지 같은 환경 아래에서 제약 없이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룰을 세팅하는 역할을 했다. 이것을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필요했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전 세계에 적용하자는 것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 미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지구촌 어디에서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약자의 입장에서는 시장개방의 압박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옳다고 주장했다. 철강, 알루미늄 등 주요 품목에서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 것은 외국 정부의 부당한 보조금 지급 때문이므로 수입품에 높은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아예 중국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이미 체결한 자유무역협정도 미국에 유리하게끔 개정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전략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미국에 직접 투자하지 않은 기업을 차별했다. 다시 돌아온 트럼프는 보편적으로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해 미국에 공장이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을 확실하게 차별하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국제 무역이라는 운동장은 편평해진 것을 넘어, 오히려 일방적으로 미국에 기울었다. 이러고도 우리 기업이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태산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에서는 애플에 치이고, 파운드리에서는 엔비디아의 입맛을 맞추는데 고전 중이다. 그 와중에 경쟁기업인 TSMC에 자꾸 뒤처지고 있다, 현대차는 테슬라의 혁신적 이미지를 따라잡기 어렵다. 자율주행차의 완성 시기 역시 늦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 기업은 전기차 시장에서 치고 나가고 있다. 미국 기업은 물론이고, 대만과 중국 기업까지 시장에서 앞서 나가는 것은 이들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 주요 기업들은 정부와 한 팀이 되어서 움직인다. 모두가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경쟁의 운동장을 편평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정부와 국회가 기업의 대외 경쟁 조건을 개선하고 우리 기업을 지원하는데 한마음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현재 여야 간의 갈등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최악이다. 기업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관심이 있는 국회의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탄핵에 계엄으로 대응하고, 또다시 탄핵으로 대응하고 있다. 예산은 삭감하고 민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기업 경영을 위해 글로벌 현장을 누벼야 할 기업인은 갖가지 사유로 법원에 출석해야 하고, 기업 경영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기업 총수를 처벌한다. 보조금 지급은커녕, 세계 최고의 징벌적 상속세로 투자 의욕을 꺾어 놓는다. 정부는 상법개정안이 기업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기본법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규제법으로 변신 중인 줄도 모르고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러고도 어떻게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며, 기업의 밸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을 벌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훈수를 두고, 감 내놔라 대추 내놔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돈을 버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산다는 것울 잊은 채, 기업을 두들기면 돈이 생긴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돈은 기업이 번다. 기업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린다. 돈은 그냥 벌어지지 않는다. 기업인의 창의적 사고와 시기에 맞는 전략적 선택이 돈을 번다. 과거에 돈을 잘 벌던 기업들도 한순간의 실기로 나락에 빠지는 경우를 무수히 보아왔다. 그런데도 기업이 어찌 되든 간에 정쟁만 하겠다면, 기업 경영의 운동장을 편평하게 해 달라는 요구조차도 어쩌면 사치일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도 우리 기업이 서 있을 수 있기만이라도 바라야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제발 모두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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