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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톺아보는 세상만사] 1335명...한국전 1128일 동안 150만명 이상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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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톺아보는 세상만사] 1335명...한국전 1128일 동안 150만명 이상 사망
  • 김혜림 기자
  • 승인 2021.06.23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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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아닌 정전...남과 북 여전히 대치 중
한미 무조건 대화 제의에 북한 '도리질'

[매일산업뉴스] 오는 25일은 6·25전쟁이 터진 지 71년이 되는 날입니다. 1950년 6월25일, 이 땅은 ‘동족상잔’ 비극의 무대로 세계사에 등장했습니다. 1128일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150만 5899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루에 1335명 이상이 죽은 셈입니다.

북한의 남침 단계  ⓒ군사편찬연구소
북한군의 남침 단계
               ⓒ군사편찬연구소

23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6·25 전쟁에선 84만 7169명의 군인이 전사했습니다. 우리나라 군인 13만7899명, 북한군 52만명, UN군 4만 670명, 중공군 14만 8600명이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 군 사망자 중 2450명은 14~18세 소년병이었습니다. 전선이 남으로 남으로 밀리자 학생들이 총을 들었습니다. 학도병들이지요. 17개국이 참전한 UN군 중에는 미군이 3만6940명으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냈습니다. 양국 관계를 ‘한미혈맹’으로 부르는 이유겠지요. 영국(1078명), 터어키(741명) 등 우방국 군인들이 이방의 하늘 아래서 눈을 감았습니다. 중공군이 국군보다 전사자가 더 많았던 것은 파상적인 공격을 통해 수적으로 압도하는 인해전술을 쓴 탓이었겠지요.

전쟁이 일어나면 민간인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마련입니다. 6·25 전쟁도 예외는 아

ⓒ군사편찬연구소
ⓒ군사편찬연구소

니었습니다. 65만 5599명의 민간인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남한측은 민간인 24만4663명이 죽었습니다, 학살당한 민간인도 12만 8936명이나 됩니다. 미군에 의해 민간인이 학살된 ‘노근리 사건’, 대한민국 정부 주도로 좌익을 처단한 ‘국민보도연맹사건’, 인민군과 빨치산을 토벌하던 국군에 의해 적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민간인이 대량학살당한 ‘거창양민학살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북한 민간인도 28만2000명이 희생했습니다. 이밖에 남한의 경찰(남한)도 3131명이 죽었습니다.

부상자 및 행방불명자는 전사자의 몇 배에 달합니다. 인명 피해뿐이 아닙니다. 6·25 전쟁으로 전 국토는 쑥대밭이 됐습니다. 전쟁 기간 남한 지역에서만 61만2636채의 집이 무너졌습니다. 공장도 1952년 4월 말 기준 914곳이 파괴됐습니다.

김혜림 대기자
김혜림 대기자

이처럼 어마어마한 사상자와 물적 피해를 남긴 6·25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1953년 7월 27일 당시 UN군 총사령관 클라크,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는 종전이 아닌 정전 협정을 맺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전 당사국이었으나 이승만 정부가 정전협정 자체에 반대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전문 5조 36항과 부록으로 되어 있는 이 협정으로 이 땅에서 총성은 멎었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은 38선 대신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입니다.

두 동강 난 한반도 허리에는 남에도 북에도 속하지 않는 4km 너비의 비무장지대가 있습니다. 몇 해 전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판문점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곳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남북의 정상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고 도보다리를 정답게 거닐기도 한 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했습니다. 선언에는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획기적 개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해 9월18일 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했고 그 이튿날 정상회담을 가진 뒤 ‘9월 평양 공동선언’을 내놨습니다.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다른 국가의 전문가 참관 아래 영구 폐기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등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이 뉴스는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한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의 돈독한 모습과 겹쳐지면서 ‘이 땅에서 핵 위험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요. 남북 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개성에 지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폭파되었습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을 방문하겠다던 김 위원장의 모습을 우리는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한 중인 성 김 미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21일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북에게 "조건 없이 만나자"고 촉구했으나 북은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바로 이튿날 미국측에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매몰차게 말했습니다. 지난 5월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켜 나갈 기회가 온다면 온 힘을 다하겠다”면서 “북한의 호응을 기대한다”는 문 대통령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건만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요원합니다. 통일은 커녕 이산가족들의 만남조차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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